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주차공간이 부족한 도시지역에선 ‘주차 분쟁’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발생한 많은 강력 사건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넘치는 차량에 비해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빚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장애인·전기차 전용공간에 일반 자동차가 주차되면서 일어나는 갈등도 적지 않다. 평소 이용자가 적은 체육 시설이나 공동주택 주차장의 장애인 전용구역을 줄여 주차난을 해소하자는 국민청원 여론도 있다. 획일적인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융통성 있게 해서 자동차가 많은 지역의 주차난에 숨통이 트이게 하자는 주장이다. 장애인을 적극 배려하는 전용 주차 면을 더 배정해야한다는 반대론도 만만찮다. 장애인 주차장을 기계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재고하고 의무 비율도 유동적으로 하자는 주장은 타당한가.
그런데도 법 규정 때문에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은 빠짐없이 있다. 이용자가 별로 없는 체육 시설이나 아파트에도 장애인 주차구역이 의무적으로 있으나 비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줄여 일반 주차 대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주차장법 시행령에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획 설치 규정이 있다. 주차 대수의 2~4% 범위에서 수요를 감안해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정하는 비율 이상을 의무로 설치해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주차 대수 규모가 50대 이상이면 주차 대수의 3% 이상을 장애인 전용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장애인 전용공간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주민이 적은 아파트나 장애인이 잘 이용하지 않는 스포츠 시설, 골프장, 스키장 등에서는 특히나 사정에 맞춰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가변으로 융통성 있게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국내 자동차 총 등록 대수는 2491만1000대로, 1년 새 약 55만 대 늘었다. 인구 2.07명당 자동차 1대꼴이다. 2010년(1794만1356대)과 비교하면 무려 700만 대나 증가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자체 투표로 127면인 장애인 주차구역을 절반으로 줄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신축성 있게 제도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장애인은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도 적지 않다. 보통 일반인도 얼마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하지만 크게 보면 모든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최소한의 제도다. 통상 비어 있다고 일반인과 함께 이용하도록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미 주차된 일반 차량을 빼달라고 연락하는 과정의 번거로움이나 제때 응답이 없을 경우 장애인들이 겪게 될 애로를 생각해보라. 주차장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풀어나가야 한다. 도심에 주차타워 등 주차 전용 시설을 더 많이 건설하는 게 정공법이다.
오히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서의 불법 주차를 더 강하게 단속할 필요가 있다. 병원 주민센터 등 공공성이 있어 장애인의 방문이 더 잦은 장소에는 적정 장애인 전용 주차장 확보와 함께 감시카메라 설치 등으로 일반인 주차를 막아야 한다. 장애인을 배려하고 사회적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다. 많은 선진국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나 하나쯤은…’이라거나 ‘잠깐 주차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떨치고 장애인과 함께 간다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서의 위반 건수를 보면 2015년 15만 건에서 2019년 60만 건으로 늘었다. 이 5년간 걷힌 주차 위반 과태료만 1480억원에 달했다. 이 통계에서 딜레마 같은 문제의 양면성이 보인다. 무엇보다 주차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과태료에도 불구하고 우선 급하다 보니 장애인 지정석에 주차하는 것이다. 다만 중복 위반자 건수가 계속 늘어난다는 통계는 과태료 정도의 규제론 장애인 주차구역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진화하는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장애인석의 위반자에게 안내 방송 등으로 규정 위반 주차를 하지 않도록 계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장애인에 대해 전용 공간으로 우대하되 경증 장애인은 스스로 우대 등록을 사양하면서 동등한 사회적 대우를 자청하는 것도 선진사회로 가는 교양 아닐까. 궁극적으로,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장애 비장애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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