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사는 곳? 묻지마, 수다나 떨자"…'태그니티'가 뜬다

입력 2022-10-10 14:12   수정 2022-10-10 16:46


"서로 사생활 정보는 궁금해하지 맙시다. 모임은 3시간 진행합니다. 일단 나와보세요. 혹시 알아요? 엄청 재미있을지."

최근 국내 한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에 올라온 독서모임 공지글이다. 최대 100명 정원으로 운영되는 이 모임에 가입한 회원은 98명. 2018년 11월 첫 오프라인 모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30회에 달하는 모임이 꾸려졌다. 처음엔 띄엄띄엄 진행됐지만 최근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계기로 찾는 이들이 늘어나며 한 달에도 서너 차례 모임이 진행되는 등 인기다.

모임장인 서지환 씨(40)는 "지난 1~2년간 코로나19 집합금지 조치로 대외 활동이 줄어들다 보니 회원들이 많이 유입됐다"면서 "최근 이런 모임이 많아지면서 찾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 독서모임은 지정된 도서를 읽거나 자유 도서를 선택하는 등 '책'을 기반으로 후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별도 가입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개인정보도 의무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사는 곳, 나이, 직업, 연봉, 기혼 여부, 출신지 등 개인 신상은 모두 철저히 비밀에 부쳐도 무방하다. 이름조차 모른 채 '닉네임'으로만 활동하는 회원도 있다.

사생활은 배제하고 비슷한 지적 욕구와 취향을 가진 회원들이 모여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취향 공동체'인 셈이다. 서 씨는 "의무적으로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지만 오히려 회원들이 부담 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기존 온라인 커뮤니티 한층 진화한 '태그니티'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온라인에서 취향이 비슷한 이들과 관계를 맺는 이른바 '태그니티'가 급부상하고 있다. 태그니티는 '해시태그'와 '커뮤니티'의 합성어로 회사나 학교 같은 공적 공동체와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 개개인 취향이나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를 말한다.

1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앱이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모임이 줄어들면서 '관계'를 맺으려는 이용자들 유입이 크게 증가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앱 '문토'는 작년 1월 오픈 당시 개설된 모임 수가 31개에 불과했지만, 지난달 말 기준 1만3000개 넘는 모임이 생길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같은 기간 가입자 수도 1만8400명에서 35만3000명으로 급증했다. 월 활성 사용자(MAU) 수는 14만5000명에 달한다.

문토 관계자는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영향으로 직장에 대한 낮은 소속감, 부동산·물가 상승에 따른 박탈감 등으로 개인들의 외로움이 강해지면서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로도와 부담감이 적은 '느슨한 관계'를 기반으로 각자 주어진 질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주목받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문토는 앱 내에서 모임을 만들거나 다른 이용자 피드를 구독한 뒤 마음에 들면 이 이용자가 개설한 모임에도 참여가 가능한 커뮤니티 앱이다. 유사한 서비스로 취미·여가 중심 플랫폼 '프립' 이용자 수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프립은 아웃도어 스포츠와 베이킹, 피트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취향에 맞는 이들이 모여 온·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참여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다. 지난해 말 프립의 누적 회원수는 110만명 수준에서 최근 140만명까지 부쩍 늘었다. 온라인으로 회원을 모집하지만 오프라인 활동으로 이어질 만큼 가입자들의 참여도가 높다.

서비스 가운데 올해 상반기 오프라인 모임 카테고리의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0% 증가할 정도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프립 관계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서로의 취향과 목적에 맞게 모이는 '취향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며 "이들에게 취향을 나누고 성장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자기발견'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MZ세대는 취향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 커리어 발전과 성장에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누구보다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무시못할 소비층 부상플랫폼 기업들도 주목


'태그니티'의 부상은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감염병 확산 전후 3년간 야외 활동이 차단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에서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는 이들이 한층 늘어났다. 특히 젊은 MZ 세대를 중심으로 이같은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태그니티는 기존 커뮤니티와 달리 관계보다 '목적'을 우선시하는 특징이 있다.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필요한 목적에 집중하는 경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취향 기반 공동체는 느슨한 소속감이 특징적이지만, 하나의 목표(취향)를 중심으로 뭉친다는 점에서 영향력 있는 소비층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상당한 파급력을 발휘해 최근 국내 주요 IT 기업들을 '태그니티'를 겨냥한 서비스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당근마켓 등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연말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 현재 제공하고 있는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에 이용자들끼리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을 넣어 체류 시간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이미 날씨와 스포츠 서비스에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커뮤티니 기능을 넣었다.

카카오 역시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관심사 기반 채팅 서비스 '오픈링크'를 신규 앱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카카오톡 전체 대화량에서 오픈채팅 비중이 40%에 이를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대대적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남궁훈 대표는 "카카오는 하나의 서비스나 플랫폼이 아니라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서로 연결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핵심 먹거리 사업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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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중고거래 기능 이후 잇따라 내놓은 서비스는 대부분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에 치중해 있다. 중고거래와 '동네생활'(우리동네질문·동네분실센터·동네모임), '내 근처'(상인과 주민 연결) 서비스에 이어 올해 4월에는 내근처 서비스에 관심사 기반 모임 '남의집' 서비스를 신규 추가했다. 특히 올해 '같이 사요', '같이 해요', '칭찬 당근 댓글', '당근 알바' 등 친목 기능을 강화했다.

이러한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이용자들이 크게 늘어 지난달 기준 누적 가입자 3200만명을 돌파했다. 불과 넉 달 사이에 200만명이 증가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당근마켓의 기업가치를 3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향후 지도 서비스, 부동산 직거래, 중고차 직거래, 당근알바와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을 고도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19를 거치는 동안 일상에서 겪는 '관계의 결핍'이 늘어나면서 점차 자신의 취향을 투영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에서도 태그니티의 영향력이 커지고 취향 기반 서비스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이런 경향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트렌드 코리아 2023'를 펴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년 키워드 중 하나로 '평균 실종(Redistribution of the Average)'을 꼽았다. 김 교수는 "불황이 가속화되면 소비자는 점점 지갑을 여는 데 까다로워지고 시장은 양극화, N극화, 파편화된다"며 "소비의 전형성이 사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사고, 다수가 좋아하는 상품으로는 승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다수가 선호하는 매스 마켓(대량 판매 시장)이 아닌, 더 뾰족하게 나의 타깃에 일치하는 시장을 파악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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