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명상 앱이 필요 없도록 이곳을 스트레스가 적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 아닌가요?”
<잘나가는 조직은 무엇이 다를까>에 소개된 한 다국적 회계법인 여성 임원의 말이다. 본사에서 몇 차례 이메일을 보내 이 앱에서 제공하는 멋진 기능과 혜택을 소개했지만, 그는 아직 로그인할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고 했다. 잘못된 번아웃(탈진) 예방법의 예시다.
어떻게 하면 조직 내에서 번아웃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잘나가는 조직은 무엇이 다를까>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원제가 <번아웃 전염병(The Burnout Epidemic)>이다. 저자 제니퍼 모스(사진)는 기업 컨설턴트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고정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그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을 포함해 세계 46개국 1500명의 중간 관리자 이상 리더들을 인터뷰하고 각종 사례와 연구 결과 등을 망라해 집필에 나섰다.
번아웃을 전염병에 비유한 것은 과언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만성적 업무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결과로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이라고 규정했다. 일련의 증상이란 에너지 고갈과 소진,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한 거부감 또는 부정적인 생각의 증가, 업무 효능감의 감소를 말한다.
기업 경영진도 번아웃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처방이 표피적이다.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옥타는 금요일 휴무제를 도입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토요일에 일하기 시작했다. 업무량을 그대로 두고 주당 노동시간만 줄인 탓이다.
2017년 이후 넷플릭스, 버진, 드롭박스,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은 앞다퉈 무제한 휴가 정책을 도입했다. 시의적절하게 자기 업무를 완수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오히려 휴가 일수가 줄었다. 무제한 휴가 제도를 적용받는 직원들은 연평균 13일만 휴가를 쓴 반면 전통적인 제도를 따른 직원들은 연평균 15일을 썼다.
사내 복지도 마찬가지다. 공짜 음식, 무료 체육관, 무료 셀프 세탁소, 볼링장, 당구대 등은 번아웃을 막지 못했다. 한 실리콘밸리 기업 직원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모든 복리후생은 착각이에요. 직원들을 일터에 붙잡아두고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수단일 뿐이죠. 저는 주말이나 휴가 때 제대로 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여성 직원들을 위한 ‘난자 냉동 지원 정책’도 오히려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를 쓰는 것을 주저하게 했다.
모스는 번아웃의 근본 원인으로 과도한 업무량, 통제력 상실, 보상 또는 인정 부족, 빈약한 인간관계, 공정성 결여, 가치관 불일치를 꼽는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을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한다면 번아웃이 오기 전에 미리 손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기업 문화는 훌륭한 번아웃 예방법이다. 구글의 연구팀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는 여러 해에 걸쳐 상위 100개의 고성과 팀을 분석했다. 이들은 회의하면서 아이디어, 해결책, 생각, 계획 등을 고르게 공유했다. 비언어적 신호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 덕분에 동료 및 리더와 쉽게 소통하며 업무량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고, 휴가를 가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
리더의 솔선수범도 중요하다. 저자는 “조직 내에서 리더는 열의를 다해 휴가를 써야 한다”며 “쉬는 동안에는 완전히 연락이 닿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리더 자신의 번아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직원의 행복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직원들이 행복하다고 느낀 주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주 사이에 13%의 매출 차이가 나타났다. 행복한 상태는 동기 부여, 인지적 유연성, 협상, 문제 해결 능력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회사 일에만 몰두하는 직원은 가족, 친구, 개인 생활처럼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에서 건강할 수 없다. 이는 직원의 행복도를 떨어뜨리고 직장 내 성과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책은 기업 내에서 번아웃을 줄일 수 있는 실용적인 방안을 잘 정리했다. 다만 세계적으로 번아웃이 늘어나는 데는 글로벌 차원의 경쟁 격화 같은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텐데, 조직 내 리더들의 노력만으로 얼마나 번아웃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도 든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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