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정부를 믿지 마라. 그들의 누구도 그들의 어떤 말도 믿지 마라.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라."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1908년 미국에서 태어난 마사 겔혼.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세 번째 부인이라고 이름을 들어보셨을 수도 있겠군요. 니콜 키드먼이 겔혼 역을 맡은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녀가 유능한 종군 기자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겔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여성 기자였습니다. 끔찍한 전쟁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니,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겠죠.
겔혼은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투쟁한 어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와 변화에 관심을 가졌겠죠. 20대에 기자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갔는데, 좌절합니다. 사내 성추행을 고발했다가 도리어 해고 당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래도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 연방긴급구호청 현장 조사관으로 미국 곳곳을 돌며 빈곤의 고통을 기록했습니다.
스페인 내전 등 전쟁터로 향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전방에는 여성들의 출입이 금지됐는데, 겔혼은 병원선(의료 시설을 갖춘 배)에 몰래 올라타서 노르망디 해변으로 갔습니다.
여러 활약에도 그녀는 미국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기자는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비판했고,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에는 미국 정부가 파나마 민간인 사망자 수를 축소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겔혼은 '반미주의자', 즉 '국익에 반하는 기자'라는 비난을 받았죠.
그럴 때면 겔혼은 "진실은 항상 불온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에 대한 그녀의 탐사 보도들은 반전(反戰) 운동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최근 출간된 <나에게 거짓을 말하지 마라>에는 겔혼처럼 끈질기고, 삐딱한 기자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습니다. '불온한 진실'을 찾아 헤맸던 기자들이죠.
그들의 기사는 때로는 여론의 반발을 샀고, 정부의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세계에 경고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호주 기자 월프레드 버쳇이 1945년 '데일리 익스프레스' 1면에 쓴 기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서구 기자 중에 처음으로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취재한 결과물이었죠.
당시 미국, 호주 등 일본을 점령한 점령군 당국은 버쳇의 기사를 부정했어요. 버쳇의 취재 인증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1951년에는 호주 정부가 여권조차 갱신해주지 않아 해외 취재에 어려움을 겪었고 1972년에야 겨우 국적을 되찾았습니다.
저자 존 필저 역시 종군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인물입니다. 필저는 이 책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부정 등 충격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파헤친 기자들과 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다소 거친 번역과 6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뒷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옵니다.
이 책에는 갖은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들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책은 말합니다. "비밀주의의 권력은 현관 뒤에서 엿보고 칸막이를 젖혀보고 바윗돌을 들춰보며 제 일을 하는 저널리스트를 혐오한다." 심지어 언론에 대한 견제와 비판도 언론을 통해 가능하다고 필저는 말합니다.
이 책 머리말에 필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선집을 훌륭한 동료 저널리스트들에게 바친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필요한 그들에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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