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대교 보복' 인정한 푸틴 "또 테러하면 더 가혹하게 대응하겠다"

입력 2022-10-10 17:32   수정 2022-11-09 00:0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 폭발 사건을 우크라이나의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보복에 나섰다. 크림대교 폭발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만인 10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했다. 서방에서는 ‘역린’ 같은 크림대교가 공격당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등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 키이우 폭격 재개
이날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폭격했다. 러시아군의 키이우 공격은 지난 7월 28일 이후 약 70일 만이다. 키이우 외에도 서부 르비우, 중부 드니프로, 제2도시인 북동부 하르키우, 남부 자포리자 등이 공격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공격으로 최소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미사일 75발을 쐈으며 8개 지역 주요 기반시설 11곳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들어 러시아군의 가장 대대적인 공격 사례로 꼽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를 완전히 파괴하려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번 공격을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만행”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안보회의를 열어 이번 공격이 지난 8일 발생한 크림대교 폭발 사건의 보복 공격임을 인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오랜 테러 행위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쿠르스크 원전, 튀르크스트림 가스관 공격 등을 한 ‘전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혐오스러운 테러단체로 지칭하며 “국방부의 조언 등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군사, 통신 시설 등에 대규모 공격을 했다”며 “우리 영토에서 테러를 저지른다면 더 가혹한 대응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키이우 공격은 크림대교 폭발 사건에 따른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월 러시아는 크림대교가 공격받을 경우 키이우를 폭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만큼 크림대교는 러시아에 전술적·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상징적인 가치가 크다.

9일 푸틴 대통령은 조사를 맡은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조사위원장과의 회의에서 “러시아의 주요 민간 인프라를 파괴한 테러 공격”이라고 말했다.
핵무기 사용 우려 증폭
크림대교를 향한 푸틴 대통령의 남다른 애착까지 감안하면 이번 폭발 사건의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19㎞ 길이의 크림대교가 2018년 5월 개통된 직후 푸틴 대통령은 직접 트럭을 몰고 건널 만큼 애정을 보였다.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9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궁지에 몰린 동물과 같은 상황”이라며 “그가 핵무기 사용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크림대교의 일부 통행이 재개되긴 했지만 우회가 권고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크림대교 파손이 단기적으로 러시아 군 및 물자 이동에 차질을 일으킬 것으로 봤다.

러시아가 크림대교 사고의 배후로 지목한 우크라이나는 명확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영국 BBC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사고 원인은 다리 아래에서의 우크라이나 무인보트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사보타주(파괴공작) 성공을 인정하기보다는 테러로 치부하길 원하고 있다고 BBC는 분석했다.

주요 7개국(G7)은 11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으로 긴급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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