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69년 된 낡은 친족상도례

입력 2022-10-11 17:24   수정 2022-10-12 00:18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

고대 로마법의 원리 중 하나다. 로마법은 같은 주거에서 동거하는 이들 사이에서 절도가 발생했을 때 소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이 가장권에 근거해 가내형을 부과할 수 있었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의 기원이다. 이 원리는 1810년 프랑스 형법전에서 명문으로 채택된 이후 19세기 여러 유럽 국가 법에 적용됐다. 대륙법 영향을 받은 우리 형법도 1953년 제정과 함께 이를 받아들였다.

69년 역사의 친족상도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방송인 박수홍 씨가 친형을 횡령 혐의로 고소하자 아버지가 “내가 횡령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친족상도례란 형법 제328조에 규정된 특례 조항이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는 제도다. 비동거 가족인 경우 범죄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하면 처벌이 가능하다. 적용되는 범죄는 절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죄 또는 그 미수범이다.

친족상도례 규정은 가족에게 일어난 재산 범죄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주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호주제가 사라진 데다 핵가족화가 심화하고 친족 간 유대관계가 약화한 사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폐지론이 일고 있지만 나름의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 남편 지갑에서 소액의 생활비를 훔치는 경우, 자녀가 학원 교재비라고 속이고 어머니에게 받은 돈을 친구와 함께 쓴 사례까지 수사기관이나 국가형벌권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합리적 개정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대상 범위를 가족공동체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부모와 자녀 또는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으로 좁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등 소추 조건을 어떻게 부과할지도 검토 과제다. 법은 시대의 사회적 가치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친족상도례 개정을 위한 사회적 의견 수렴과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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