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는 다가올 ‘테크 전쟁’의 핵심 무기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성능 컴퓨팅 기술의 중국 반출을 금지하며 미국 뉴욕주 포킵시의 IBM 데이터센터에 있는 127큐비트 양자컴퓨터 시설을 방문한 건 이 ‘사실’을 직설적으로 웅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7일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61㎞ 떨어진 요크타운하이츠에 있는 IBM 왓슨리서치센터에서 만난 스콧 크라우더 IBM 양자상용화·비즈니스개발 부문장(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백악관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암호 전쟁’”이라며 “절대 풀 수 없다고 여겨지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 비트코인 방어벽도 양자컴퓨터에 뚫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금융회사는 ‘RSA 알고리즘(공개키 암호화)’을 쓴다. 한국 공인인증서도 RSA 방식이다. 기존 슈퍼컴퓨터는 RSA 암호 해독에 100만 년 이상 걸린다. 그러나 발전된 양자컴퓨팅 기술로는 1초 만에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컴퓨터공학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미국 정보기술(IT)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은 “이르면 2027년 중국 양자컴퓨터가 금융 등 각종 암호화된 정보를 풀어낼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과학기술대는 작년 10월 66큐비트의 초전도 방식 양자컴퓨터 쭈충즈2.1을 개발했다.
김태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조만간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양자 우위’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미국이든 중국이든 양자컴퓨팅 기술을 전략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IBM은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한 포킵시 양자데이터센터(2019년 개소)에서 127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운용 중이다. 또 왓슨리서치센터에선 이보다 진화한 433큐비트의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내년 말에는 1121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선보이는 게 목표다.
냉동기 하단에는 엄지손톱 크기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퀀텀프로세서 칩이 달려 있다. 상용 서비스 중인 127큐비트 양자컴퓨터 ‘이글’ 칩이다. 이글 퀀텀 칩은 알루미늄과 나이오븀 합금 등을 얇게 겹친 뒤 미세한 회로도를 새겨 제작했다. 김 교수는 “하드웨어 측면에선 한국보다 최소 5년 이상 앞서 있다”고 말했다.
IBM은 현재 20개 양자컴퓨터를 통해 세계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4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본인의 노트북을 이용해 IBM 양자컴퓨터센터에 접속해 각종 연구를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한국도 양자컴퓨터를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금융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응용하는 연구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뉴욕=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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