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the right thing, at the right time.”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7월 ‘2022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제때 실행해줄 것을 강조했다. 롯데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추호의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문이다.
신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국내 5대 그룹으로서 롯데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숙원이기도 하다. 증권 등 자본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내년 롯데가 당면한 과제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롯데는 각 사업군을 총괄하는 HQ(헤드쿼터)와 계열사 간 관계를 효율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HQ가 좀 더 긴 시각에서 그룹의 미래를 발굴하고, 사업군에 속한 계열사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정하되 계열사 나름의 독창성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롯데 관계자는 “예전엔 새로운 사업을 할 때마다 롯데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최근엔 롯데를 떼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 회장은 계열사 CEO들이 젊은 직원과 긴밀히 소통하도록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 HQ만 해도 김상현 부회장과 정준호 백화점 사장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경영에 관한 소통을 수시로 할 정도다.
바이오, 배터리, 모빌리티 등에서 그룹의 미래를 찾고 있는 롯데로선 3조원 넘는 현금을 e커머스에 ‘베팅’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란 판단이다. IB업계 관계자는 “M&A를 위한 실탄을 충분히 확보한 덕분에 롯데는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 불어닥친 한파를 역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돈줄이 마른 유망 스타트업들이 투자 요청을 위해 앞다퉈 롯데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이자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롯데지주는 바이오와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할 자회사 롯데바이오로직스와 롯데헬스케어를 각각 설립하고 미래 먹거리 사업을 가시화하고 있다.
BMS의 미국 시러큐스 공장 인수도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시러큐스 공장은 62개국 이상의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승인 경험을 가진 회사다. 풍부한 인력 자산을 롯데가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스케일업, 공정 개발, 바이오 원액 생산, GMP 승인 등 다양한 바이오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롯데의 판단이다.
롯데정밀화학은 동북아 암모니아 유통 1위 기업의 공급·유통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청정 암모니아 도입에 앞장설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암모니아 기반 청정수소 생산 기술개발 국책과제에 롯데정밀화학이 주관하는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외에도 지난해 8월에는 세계 1위 암모니아 유통사인 미국 트라모와 국내 최초로 그린 암모니아 30만t 공급 협약을 체결하는 등 청정 암모니아 조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그룹 내 화학군 계열사인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과 함께 배터리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했다. 롯데케미칼은 분리막(PE) 생산 및 배터리 전해액 유기용매(EC, DMC) 공장을 건설 중이며, 롯데알미늄과 롯데정밀화학은 각각 양극박, 음극박(솔루스첨단소재 지분투자) 사업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기술 확보 및 계열사 간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방안을 도출하고 미래 배터리 소재 사업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미래 배터리 소재 사업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월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탠다드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로 지분 15%를 확보한 바 있다. 4월에는 차세대 배터리용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리튬메탈 음극재 및 고체 전해질을 개발한 미국의 스타트업인 소일렉트와 합작사(JV)를 설립했다. 2025년까지 미국 현지에 2억달러 규모의 기가와트급(GWh) 리튬메탈 음극재 생산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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