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값을 방어하기 위해 시장에 쏟아부은 비용이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지원으로 시장이 왜곡돼 과잉공급이 지속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정 낭비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받은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시장격리제를 위해 사용한 금액은 총 4조6780억원에 달했다. 총 9회 298만2000 톤 분량 쌀을 시장격리하는 데 쓰인 비용과 시장격리한 쌀을 보관하는 데 쓰인 비용을 합친 금액이다. 각각 4조4938억원과 1842억원이 소요됐다. 56만6000 톤 규모의 시장격리에 9299억원을 쓴 2009년이 가장 큰 규모의 시장격리를 한 해였다. 총 시장격리 비용은 수확기 내 사상 최대 규모로 책정된 올해 시장격리 쌀 45만 톤 매입비용을 합산하면 6조원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비축한 쌀을 제대로 되팔지 못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정부는 시장격리한 쌀을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되파는데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은 매입비용의 약 7%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7년 이후 쌀 시장격리 비용과 공공비축미 판매 수익을 비교분석한 결과다. 즉, 정부는 4조6780억원 중 대부분의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고 4조원의 넘는 금액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쌀값 방어 정책이 과잉공급을 부추기고 지속된 재정 낭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쌀 수요가 감소하는데 재정지원이 지속되니 공급은 감소하지 않아 시장왜곡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 1인당 소비량은 2012년 69.8kg에서 56.9kg으로 18.4% 줄어든 반면 쌀 재배면적은 2012년 84.9만ha에서 지난해 73.2만ha로 13.7%만 줄어들었다. 이는 재정 규모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쌀값 하락에 농민들을 더욱 힘들게 모는 처사란 분석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시장격리는 단기적으로 농민들을 위하는 정책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쌀 과잉공급을 유도하고 쌀값이 항상 하락하게 해 농민들이 피해를 보게 만든다”며 “쌀에 대한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작물들로 정부의 정책 지원을 늘려 쌀 과잉 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개정안은 쌀 과잉 생산으로 초과생산량이 예상 생산량의 2.5% 이상이 되거나 수확기 쌀값이 평년보다 4% 하락하면 시장격리 조치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 정책이 시행되면 2030년까지 연평균 1조 443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 의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성급히 처리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한 시장격리 정책을 면밀히 검토해 효과를 분석해야 한다“며 ”정부는 중장기적 측면에서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에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민기/권용훈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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