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프트럭 기사 A씨는 도로포장 공사장에서 폐아스콘을 적재하기 위해 후진하던 중 현장에 있던 안전관리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를 냈다. B산업은 형사합의금 등이 지급되는 단체상해보험에 A씨를 피보험자로 가입해 뒀다. 이에 A씨는 형사처벌 감경 목적으로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한 뒤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보험금을 쉬이 내주지 않았다. 보험약관에는 ‘자동차 사고로 타인에게 상해를 입혀 형사합의금을 지급한 경우 이를 보상하며 자동차의 범위에 건설기계를 포함해 자동차 사고를 보장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건설기계에는 덤프트럭, 타이어식 기중기, 콘크리트믹서트럭, 타이어식 굴삭기 등이 포함된다.
이후 문구가 문제였다. 약관에는 ‘건설기계가 작업기계로 사용되는 동안은 자동차로 보지 않는다’고 적시돼 있었다. 보험사 측은 “덤프트럭이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던 중이 아니라 폐아스콘을 운반하기 위한 작업기계로 사용되던 중에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폐아스콘을 적재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 아니라 단순 이동 중에 발생한 사고라 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은 결국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됐다. 사고 당시 A씨가 운전한 덤프트럭이 교통기능과 작업기능 중 어느 기능을 수행했는지가 최대 쟁점이었다. 조정위는 논의 끝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덤프트럭의 고유한 작업장치는 ‘적재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정위는 “덤프트럭의 적재함에 화물을 상·하차하거나 적재함 자체를 작동시키는 등 적재함을 활용하고 있을 때 덤프트럭이 작업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경우 폐아스콘 적재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덤프트럭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사고 당시 A씨의 덤프트럭은 교통기능만 수행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사현장 내 사고라 하더라도 사고 당시 덤프트럭이 고유한 작업장치를 활용하고 있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험금 지급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작년말 기준 정부에 등록된 덤프트럭은 총 5만5876대다. 이번 결정이 덤프트럭 교통사고에 대한 비용손해 보상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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