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적 자원 배분은 모든 스타트업의 고민입니다. 특히 개발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언제나 사람은 부족하고, 할 일은 산더미라는 토로는 이어집니다. ‘데이터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마켓’이 최근 스타트업 업계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업체가 완성차를 만들어야 한다면, 일종의 큼직한 자동차 부품을 파는 장터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에 한경 긱스(Geeks)가 데이터 API 활용 케이스 스터디(사례 분석)를 진행했습니다. 업체들은 API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맞춤형 개발을 관건으로 꼽으면서도 한정된 개발자 자원을 아끼기 위해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API, '조립 설명서' 치밀히 뜯어라
비플러스는 소셜 벤처를 표방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하던 박기범 대표가 2016년 창업했습니다. 회계사 출신인 그는 2008년 본격화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목격하며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재무적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사회적 금융’에 관심을 가진 그는 이후 비영리재단 근무를 거쳐 개인 간 대출(P2P) 서비스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출범 이후엔 줄곧 사회적 기업을 위한 대출에 집중해왔습니다. 큰 이익을 얻진 못하더라도, 좋은 뜻에 공감하는 개인 투자자를 모아 선순환을 일으키는 일에 주력했다고 했습니다. 담보가 부족하거나 금융권 대출 한도를 초과한 기업도 연 5~8% 금리로 약 5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비플러스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임팩트 투자 액셀러레이터 소풍벤처스의 포트폴리오 기업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박 대표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파트 근처 오래된 상가에 자주 가던 떡볶이집이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으신 거예요. 버티질 못하셨던 거죠.” 소상공인의 대출 요청은 이때쯤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골목상권을 지키는 금융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셜 벤처를 도우며 쌓은 노하우로 시중 금융기관 대비 절반 가까이 저렴한 8% 금리 대출 상품을 만들어냈습니다. P2P의 특성을 살려 가게를 지키고 싶어 하는 동네 주민들에게 투자받고, 주인은 낮은 금리를 이용하는 만큼 투자자에게 현물 쿠폰을 지급하는 형태를 구성했습니다. ‘P2P판 당근마켓’이 탄생한 셈입니다.
문제는 개발이었습니다. 비플러스의 전체 개발자 수는 3명이었습니다. 지난해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 등록을 준비하느라 개발 인력에게 다른 업무를 줄 수 없었습니다. 금융결제원 시스템 연동과 제3차 예치름 가상계좌를 연결하는 데는 인원이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결국 발견한 것이 데이터 API였습니다.
비플러스는 ‘홈텍스 증명 조회 API’ ‘여신금융협회 카드 매출 조회 API’ 등을 사용합니다. 용도는 대출받으려는 소상공인의 세액과 매출 현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실제 제공되는 정보는 소득금액증명, 결정세액, 납세증명서, 비과세 소득, 일별 거래합계 및 카드 승인 금액 등 총 36가지 상당입니다. 개발자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가능하냐고 질문하니, 박 대표는 “일종의 'DIY(Do It Yourself?소비자가 직접 제작)' 제품과 비슷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무로 된 가구를 만들어야 한다면, 개발자를 데리고 처음부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마치 산에서 나무를 구해와 껍질을 깎고 몸체를 자르는 일이나 다를 게 없다고 했습니다. 데이터 API는 일종의 부품 개념이라, 조립만 잘하면 빠른 사용이 가능하단 것이 박 대표 경험입니다. 다만 ‘만능’이 아님은 다시 강조됐습니다. “데이터 API를 잘 쓰려면 조립설명서와 같은 API 명세표를 얼마나 꼼꼼하게 살피는지가 관건이다”는 것이 그가 덧붙인 조언입니다. 박 대표는 “개발 과정이 까다로울 수는 있지만, 법 개정에 따른 시스템 개편 등도 지원되기 때문에 인력 분배가 어려운 업체일수록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승부의 시간', API로 자원 아껴라
박지운 샐러리파이 대표는 초기 창업가입니다. 지난 5월 법인을 설립하고, 6월에 시드(초기) 투자를 받았습니다.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현대엔지니어링 화공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다 진로를 틀었습니다. 이후엔 고산 대표가 이끄는 에이팀벤처스에서 3년을 일하며 스타트업 경험을 쌓고, 월급을 선지급해주는 서비스 ‘샐러리파이’를 만들었습니다.박 대표는 샐러리파이의 사업 모델을 “월급 받는 근로자들에게, 일한 만큼 계산을 해서 돈을 미리 지급해주는 서비스”라고 설명했습니다. 월급 선지급 플랫폼을 통해 회원을 모으고, 샐러리파이가 월급을 대신 준 다음 근로자의 월급을 받아 가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관건은 신청자가 실제 근로자인지 정확하게 확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플랫폼을 만들어가던 시기, 샐러리파이의 전체 인력은 대표를 포함해 두 명이었습니다. 원래는 회사와 직접 계약을 맺어 보수 지급을 조율하려 했지만 설득이 쉽지 않아 B2C 모델부터 착수했습니다. 재직증명서나 근로계약서, 급여 이체 내역 등을 일일이 회원에게 요청했습니다. 적은 인력으론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API 마켓엔 근로자 재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구현돼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고객 동의를 받고 4대 보험 가입 여부를 조회할 수 있는 API부터 활용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창업 준비 단계서 조사를 했을 땐 누가 50~60만원이 없어서 샐러리파이 서비스를 쓰겠냐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일단 시범 운영을 통해 시장 가능성을 증명할 데이터가 필요했는데, 마침 API를 무료로 쓸 기회가 있어 사업에 녹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데이터 API는 ‘승부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하는 장치라고 말했습니다. 박 대표는 “사실 건강 보험 조회 프로그램 등은 직접 만들려면 못 만들 것도 없다”며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결국 사용자가 서비스를 안 쓰면 망하는 게 스타트업인데, 석 달이면 사업 가능성은 충분히 판가름 난다 싶었다”며 “이 단계서 API를 이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업종에 따라 API의 활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며 “국내 API 마켓은 신용평가나 지급결제 등 금융 솔루션이 발달한 편이라 핀테크 스타트업이 이용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전했습니다. 서비스 종속 여부는 따져봐야 할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사용을 시작하면, 성장 과정에서 API를 떼어 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모듈화를 통해, API 사용 영역을 초기부터 고민하고 기획하는 시도가 중요한 셈입니다.
예상보다 거친 API 개발 과정…끈기 필요
기업형 이커머스 솔루션을 만드는 중소 시스템통합(SI) 업체 포비즈코리아는 1년 전 사내벤처 조직을 꾸렸습니다. 이들이 신사업으로 준비 중인 ‘릴라켓’은 통합 이커머스 플랫폼을 표방합니다.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준비 중인데, 제품 생산자와 도매상, 소매상의 역할을 구별하지 않고 회원가입을 할 수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원할 때면 제품 공급자가 됐다가, 다시 판매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포비즈코리아는 기본적으로 개발자 비중이 높은 업체입니다. 주요 사업이 카페24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모델과 비슷하다 보니, 100여명 인력 중 절반이 개발자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API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유명호 포비즈코리아 비즈니스 성장 그룹장은 “선택과 집중”이란 키워드를 꺼냈습니다.
모든 소프트웨어(SW)를 홀로 개발하는 회사는 흔치 않습니다. 포비즈코리아 역시 지금까지 서비스는 서드 파티 업체(호환 SW 개발사)를 직계약하는 방식을 써왔습니다. 유 그룹장은 “직계약 방식의 장점은 단가가 싸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업체를 선별하고, 과거 이력을 따지는 과정 자체가 복잡하다고 했습니다. 처음 10명이 시작한 사내벤처 입장에선 부담이었던 셈입니다. 유 그룹장은 “API 마켓은 일종의 플랫폼이고, 내부에서 판매되는 API는 제3의 개발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API 업체의 선별력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플랫폼 안에서 다양한 기능을 사서 쓰다 보니, 시간 절약은 당연히 따라붙었습니다.
포비즈코리아가 선택한 플랫폼은 ‘하이픈’이었습니다. 결제업체 KSNET에서 인적분할을 통해 탄생한 업체입니다. 포비즈코리아의 투자사 중 하나가 KSNET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로 업계에선 가격 측면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주요 경쟁사로 꼽히는 ‘코드에프’는 성능, ‘쿠콘’은 금융 API 전문성 등이 특징으로 언급됩니다. 다만 주로 쓰이는 API는 대부분 비슷한 편입니다. 개인정보와 기업정보, 지급결제 API 등을 주요 라인업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포비즈코리아는 ‘1원 인증 API’ ‘입금 확인 API’ 등을 쓰고 있습니다.
포비즈코리아의 릴라켓 관련 조직은 20명까지 늘었습니다. 개발자는 10명 상당입니다. 유 그룹장은 “개발자를 프론트엔드, 백엔드 등으로 단순 분류하지만, 실제론 작업 이력마다 세부 전문 영역이 정해져 있다”며 “API 대체를 통해 잘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API 사용을 고려하는 업체엔 ‘끈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실제 API는 DIY 가구 조립보다 훨씬 더 거칠다”며 “설명서에 맞춰 부품을 끼우는 게 아니라, 원목과 톱도 구비해야 하는 느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맞춤형 개발에는 분명 이점이 있는 형태지만, 예비 API 사용자층을 고려했을 때, 보다 ‘완성품’에 가까운 API가 배포돼야 유의미하다는 평가입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참 한 가지 더
마이데이터가 불 댕긴 API 마켓?
마이데이터 사업은 올해 처음 시작됐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진 내 정보를 한눈에 모아 관리할 수 있게끔 하는 서비스가 생겨난 것입니다. 지난 1월부터 은행과 카드사, 핀테크 업체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API 방식 마이데이터 사업을 꺼내들었습니다. 개인이 특정 기관을 지정해 신용 정보를 통합으로 조회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API 마켓은 마이데이터 시스템 구축이 어려운 사업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운영사들은 대부분 정보기술(IT) 유관 업체들을 모태로 개발 노하우를 쌓아온 곳들입니다. 2006년 설립된 쿠콘은 웹케시그룹 관계사입니다. 지난해 4월 코스닥시장 입성에 성공했습니다. 하이픈은 1999년 설립된 결제 업체 KSNET의 하이픈사업부를 모태로 합니다. 국내선 처음으로 이커머스 형태의 API 거래 플랫폼을 내놓은 곳입니다. KSNET 경영권을 들고 있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톤브릿지캐피탈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코드에프는 전자금융 업체 세틀뱅크(현 헥토파이낸셜)가 지난 5월 인수했습니다.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는 현재까지 총 63개사가 받아냈습니다. 허가 심의를 받고 있는 업체는 26개사입니다. API 마켓 입장에선 잠재 고객이 계속 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오는 2025년 국내 데이터산업 시장 규모는 약 33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이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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