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가 진짜 횡재한 건가

입력 2022-10-12 17:57   수정 2022-10-13 00:19

뜻밖에 재물을 얻음. 횡재의 사전적 의미다. 도둑 벌채를 엄격히 금지한 중세 영국에서 폭풍에 쓰러진 나무는 주워가는 걸 허용한 데서 유래해 영어론 윈드폴(windfall)이라고 한다. 이런 ‘왕재수’하곤 거리가 먼 국내 정유회사들이 난데없이 횡재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올라 최대 이익을 냈으니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논리다. 국내 정유 4사는 올 상반기 12조32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미·영은 석유회사, 국내는 정유사
영국은 이미 석유 및 가스회사에 순이익의 25%를 ‘에너지 수익 부담금’으로 한시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6일 횡재세 도입을 공식화했다. 미국은 이익률 10% 이상 석유회사에 세금을 추가로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유사에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이들은 다음달 3일 토론회를 열고 세법 개정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국내 정유사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얼토당토않다. 우선 국내와 해외 업체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국내 정유사는 모두 정제업체다. 미·영 회사들은 석유·가스를 생산하면서 정제도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해 신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한 엑슨모빌은 세계 일곱 번째 석유회사다. 이들은 원유 생산 비용에 차이가 없어 유가가 오르면 고스란히 이익도 불어난다. 반면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전량 수입한다. 유가 상승은 그대로 원가 부담이다. 이런 구조에서 횡재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설사 횡재세를 도입한다고 해도 적정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불분명하다. 단순히 과거 몇 년간 수익을 기준으로 세금을 더 걷는다면 기업이 이익을 위해 ‘조(兆)’ 단위 투자할 의욕이 꺾일 게 뻔하다. 한발 더 물러나 초과이익을 세금으로 떼간다고 치자. 과소이익이나 손해 땐 세금을 돌려줄 건가. 국내 4사는 석유제품과 원유 가격 간 차이인 정제마진이 커져야 이익이 늘어난다. 정제마진은 통상 배럴당 4~5달러가 손익분기점이다. 지난주엔 2.4달러까지 떨어졌다. 3분기엔 원유가격 하락으로 재고자산평가손에 외환차손까지 덮쳤다. 벌써 하반기 영업이익은 상반기 대비 반토막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불과 2년 전인 2020년엔 상반기에만 5조원 이상 손실을 본 적도 있다.
더 벌면 더 내는 법인세면 충분
용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 때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노동운동가 출신 청년 정치인인 그는 20대 때는 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더불어시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의석 감소를 막기 위해 급조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다. 기본소득당 대표였던 그는 민주당 후보들보다 앞선 5번 순번을 받았다. ‘꼼수’ 비판을 받은 민주당이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다며 당선권에 그를 넣었다. 용 의원의 정치적 역량과 능력을 인정한다고 해도 국회 입성에 운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그의 월급에 소득세에다 횡재세까지 물릴 순 없지 않은가.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다. 더 벌면 더 내는 법인세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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