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약혼식·황제의 갑옷·사랑스런 공주…화려한 걸작의 향연

입력 2022-10-13 17:57   수정 2022-10-14 02:42


합스부르크 왕가의 컬렉션은 그 자체로 ‘유럽 문화예술의 보고(寶庫)’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땅의 절반을 지배하며 명작을 대거 수집해왔다.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되는 작품도 규모와 종류 양면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합스부르크 왕족의 초상부터 철갑옷, 무기, 공예품까지 총 96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찾는다. 놓치면 후회할 만한 주요 전시품을 큐레이터와 함께 선별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사랑스러운 공주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흰 드레스를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귀여운 어린 공주를 그린 이 작품의 모델은 펠리페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다. 공주의 초상은 총 3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다섯 살 때의 공주를 그린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는 공주와 정혼한 열한 살 연상의 외삼촌 레오폴트 1세에게 공주가 성장하는 모습을 초상으로 그려 보냈다고 한다. 그리기 까다로운 드레스의 레이스와 주름의 질감을 벨라스케스만의 노련한 색채 기술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돋보인다. 벨라스케스는 스케치에 공들이기보다 대강 형상만 잡은 뒤 붓놀림을 다양한 두께와 농도로 사용하곤 했다. 이 작품도 벨라스케스의 화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갑옷 등 소장품으로 엿보는 왕족의 생활
합스부르크 왕가를 이끌었던 왕족들의 소장품도 볼 수 있다. 15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오른 막시밀리안 1세는 갑옷으로 군주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곤 했다. 당시 갑옷은 정치적·군사적 권력의 상징이었다. 남성의 소유물 가운데 가장 값비싼 물건 중 하나였던 갑옷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도구였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막시밀리안 1세의 강철 갑옷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갑옷 제작자인 로렌츠 헬름슈미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장, 시합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입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조립식 부속품으로 이뤄져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로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작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여왕으로 꼽힌다. 빼어난 미모를 지녔을 뿐 아니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로서 왕가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평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에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가 가장 아꼈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의 약혼 축하연’을 담은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궁정 축하연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그림이다. 당시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의 상중이라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대신과 황실 시종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다.
정물화의 대가가 그린 꽃병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당대 화풍을 엿볼 수도 있다. 정물화의 대가로 꼽히는 얀 브뤼헐 1세가 그린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이 대표적이다. 그의 별명은 ‘꽃 브뤼헐’이었다. 마치 진짜 꽃을 그린 것처럼 식물을 섬세하게 표현해서다. 중국 명나라 청화백자에 꽂혀 있는 여러 색깔의 꽃을 그린 이 작품도 섬세하고 생동적인 묘사가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회색빛과 푸른빛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검은 붓꽃이다. 검은 붓꽃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선 잘 찾아볼 수 없지만, 얀 브뤼헐 1세의 작품에는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떨어진 꽃잎은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메멘토모리’를 상징한다.

16세기 베네치아의 예술가 사이에서 유행하던 주제였던 동방박사도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베로네세(파올로 칼리아리)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처음으로 경배한 세 명의 동방박사를 그렸다. 이들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값비싼 직물로 만든 의복과 선물을 바치고 있다. 동양풍의 의복과 이들이 타고 온 낙타는 동방박사들이 멀리서 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베로네세의 후기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어둡고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를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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