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아민 말루프 작가(사진)는 13일 서울 롯데 시그니엘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49년생인 말루프 작가는 레바논에서 나고 자랐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일간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레바논 내전을 피해 20대에 프랑스에 귀화했다. 그는 소설을 비롯해 역사와 문명 비평 에세이, 오페라 대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말루프 작가는 프랑스 내에서 문학적 성취를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레바논 민족의 수난사를 다룬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로 1993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학술기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됐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동방의 항구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말루프 작가는 전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문학이 필수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며 “문학은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위기 등 오늘날 많은 갈등은 우리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며 “문학은 나와 다른 문화와 타인을 깊숙이 이해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말루프 작가는 역사와 국가, 문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믿는다. “문학은 국가의 구조적인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말루프 작가의 작품은 전쟁 등 폭력적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그는 “저는 혼돈의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제 작품과 박경리 작가의 문학이 통하는 이유는 그 밑바탕에 비슷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말루프 작가는 “한국은 기적의 나라”라며 “레바논은 과거 잠재돼 있는 기회, 가능성이 많은 나라였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풀지 못한 데 비해 한국은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은 <토지>를 쓴 소설가 고(故) 박경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에게도 상을 주는 국내 첫 번째 ‘세계 문학상’이다. 토지문화재단과 원주시가 공동 주최한다. 상금은 1억원이다.
강자모 세종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등 7명으로 구성된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말루프 작가는 현대의 폭력적 사태와 사고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용서와 화해,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립되는 여러 가치의 충돌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그의 작품들은 상호이해와 화합의 정신으로 인류 공동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세계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이 따로 없는 전원협의 체제다.
말루프 작가는 오는 17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작가 대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