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공원은 서울의 명소다. 하지만 몰려든 시민으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과도한 음주 문화도 논쟁점이 되고 있다. 간식 수준을 벗어난 음식까지 곁들인 한강변의 음주가 나들이 나온 다른 시민을 불편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한강공원을 음주 금지지역으로 정해 모두가 쾌적한 분위기를 즐기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울시가 규제할 법적 근거가 있기는 하다. 반면 가뜩이나 정부의 규제 법이 범람하는 판에 서울시의 지방자치단체 규제행정까지 계속 용인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성숙한 시민이 자율적으로 할 행태에 왜 행정이라는 이름 아래 공권력을 개입시키느냐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선량한 관리 의무와 자유 시민의 기본권이 맞부딪친다. 서울시의 행정 감독을 불러들이려는 한강공원의 금주 조례 제정 요구는 사리에 맞나.
한강공원에서의 음주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과도한 음주로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2021년 4월 반포지구 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대학생이 결국 숨진 채 발견돼 사회적 관심사가 됐던 것도 음주와 관련이 깊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가 조례로 음주 금지지역을 시내에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이 지자체에 조례 제정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서울시 의회가 조례를 만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금주의 구체적 장소와 시간 등은 서울시 고시로 구체화된다. 서울시가 공공청사, 어린이집, 청소년 보호시설, 도시 공원, (한강공원을 포함하는) 하천 등을 대상으로 금주구역 선포를 준비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하지만 여론만 청취할 뿐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강원 횡성군, 경기 고양시, 충북 충주시 등지에서는 이미 금주 조례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 산하 자치구 가운데서도 구 차원의 조례로 금주구역 설정 근거를 마련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모든 시민 각자가 제대로 가지는 게 물론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런 수준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행정기관이 선의의 관리자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의 공원을 만들고 육성하는 것은 행정기관의 기본 책무다. 주어진 권한을 왜 행사하지 않나.
행정으로 간섭·감독하고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바로 좋은 효과가 난다는 보장도 없다. 쓰레기가 많다면 쓰레기통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게 기본 행정이어야 한다. 술 판매에서는 성인 확인을 정확하게 하면서 계몽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보완 방법이다. 감독과 규제 일변도의 행정은 오히려 법 위반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경계심이 앞서야 한다. 프랑스 파리 등을 비롯해 서구에서는 담배꽁초를 거리에 버리는 것에도 상당히 관대하다. 그 정도는 용인하는 것이다. 껌이나 담배꽁초 버리는 정도를 아예 죄악시하는 싱가포르와 프랑스 가운데 어디가 국제적으로 선진국 대우를 받고 있나.
자유는 기본권이다. 그 기본권은 보호되는 것이 현대 민주 국가의 큰 방향이다. 쓰레기 발생 정도나, 꼭 음주 때문이라는 명확한 원인 규명도 없는 사고 발생을 이유로 시민 행동에 제약을 가하자는 발상 자체가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접근법이다. 물론 시민 스스로 크든 작든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자면 강제 규정보다는 교양교육, 실천적 솔선수범의 사회적 가르침이 중요하다.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 시민으로의 길은 멀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옳은 방향이다. 법과 규정 만능주의를 오히려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설령 국회가 ‘법만능주의’ 관점에서 근거 법을 덜컥 만들어도 금주 지정 조례에 매우 신중한 서울시의 접근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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