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녀 마니아'들이 빠져든다...국내 RPG 게임의 남다른 시도[긱스]

입력 2022-10-19 08:14   수정 2022-10-19 08:16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미소녀' 캐릭터를 빠트릴 순 없죠. '미소녀 덕후'들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들의 팬심은 여느 아이돌 팬들 못지 않습니다. 이들을 겨냥한 미소녀 RPG(역할 수행게임)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미소녀 캐릭터와 아이템을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자신이 게임속 주인공이 되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미소녀 캐릭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면 말입니다.
국내 게임 스타트업 링게임즈가 제작한 '스텔라 판타지' 이야기 입니다. 게임 아이템을 NFT로 발행하고, 토큰 경제를 기반으로 게임 내 경제 생태계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이들의 새로운 시도를 살펴봤습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흔치 않던 20여년 전 만화방, 도서대여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소년이 있었다. 수도권 외곽의 작은 동네에 살던 그는 책방에서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만화, 소설, 잡지 등을 탐독했다. 닥치는대로 콘텐츠를 흡수하며 당시 충족되지 않던 문화적 욕구를 채워나갔다.


그러던 그는 20대에 작은 게임사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하며 게임의 세계에 들어갔다. 이후 22년간 몸을 담으며 PC·모바일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 산업을 경험했다. 2019년에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동료들과 게임사를 창업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아니메 스타일 게임에 블록체인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로 게임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블록체인 게임 스타트업 링게임즈의 윤주호 대표(41·사진) 이야기다. 오는 11월 게임 '스텔라 판타지' 출시를 앞두고 분주한 그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다.
블록체인을 입은 미소녀 액션 게임


링게임즈는 전세계 1000만 다운로드를 넘긴 흥행작 ‘킹스레이드’ 제작진이 모여 설립됐다. "우리가 만든 게임을 직접 서비스 하고싶다"는 게 창업 이유였다. 제작, 유통, 배급사가 따로 돌아가는 기존 게임산업의 한계를 넘어 제작사가 이용자와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윤 대표는 사용자에게 게임을 직접 유통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블록체인의 '커뮤니티 기능'을 눈여겨 봤다. 특정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이용자들이 팬처럼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보고 이런 방식을 게임에 접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열풍이 불었던 엑시인피티니 등 블록체인 기반의 플레이투언(P2E) 게임의 영향도 받았다. 게임 이용자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주주처럼 게임에 참여하고,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로 팬층을 확보하는 방식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커뮤니티형 게임이라고 판단이 들었다. 크립토 세계에 '딥 다이브'된 윤 대표는 첫 게임으로 만들던 ‘스텔라 판타지’를 지난해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전환했다.

스텔라 판타지의 두드러지는 외형적 특징은 '아니메' 스타일의 그래픽이다. 다양한 미소녀 캐릭터들이 등장해 '딸 키우기 게임'으로 유명한 '프린세스 메이커'가 연상되기도 한다. 윤 대표는 "아니메 장르는 지금의 한류 콘텐츠처럼 남미·북미 등 글로벌 시장에 오랜 기간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의 코믹콘 같은 행사를 가도 전세계 사람들이 이런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한다"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아니메를 좋아하는 글로벌 고객들에 다가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팬 베이스 유저 + 수익 창출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과 웹3.0 기술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스텔라 판타지의 타깃은 기존의 게임 애호가들이다. 이들을 블록체인 세계와 연결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게임은 자체 토큰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토큰 소유는 게임의 운영에 참여하는 주주로서 역할도 하게 된다. 윤 대표는 "토큰은 단순 현금화를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게임 운영에 필요한 자산의 가치로 보존된다"라며 "이용자들이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처럼 애정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는 게임이 인기를 끌수록 토큰(자산)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게임 커뮤니티도 발전하고 이용자는 외부 평가도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은 캐릭터 컬렉션 RPG(역할게임)의 재미와 P2E 게임의 요소를 두루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판타지와 SF 장르가 공존하는 게임 세계관 속에서 미소녀 캐릭터가 다양한 모험을 통해 성장하고, 캐릭터와 재화는 모두 NFT로 성장 및 거래가 가능하다.



캐릭터는 게임 내 활동으로 재화를 생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각종 재료를 모아 아이템을 강화게 만드는 수집형 RPG를 구조도 구현했다. 게임 콘텐츠를 즐기면서 게임 아이템 중 하나인 '캐릭터 조각'을 수집하면 새로운 캐릭터를 획득할 수도 있다. 게임 상에서 이용자가 강하면 캐릭터 조각을 많이 얻거나 좋은 캐릭터 조각을 획득할 확률이 높다. 보통 미소녀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그간 애정을 가지고 키웠던 캐릭터도 사라져버린다. 스텔라 판타지는 이런 불안요소를 해결한다. 스텔라 판타지에서 이용자가 보유한 캐릭터와 아이템은 모두 NFT로 만들 수 있어 영구적인 소유가 가능하다.

기존 P2E 게임의 '지루함'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그는 "'돈 버는 게임'의 노동적 요소 즉 단순 반복 플레이를 강요하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했다"며 "이용자가 캐릭터와 성장하며 게임의 본질적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자가 게임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계속 게임을 하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업데이트로 게임 운영사는 새로운 과금 요소를 추가하고, 이용자는 다양한 활동으로 아이템을 얻게 된다. 게임 자체의 재미뿐 아니라 게임 경험을 통해 특정 물건을 생산하거나 영지(게임 내 토지)를 관리하는 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용자 간 아이템 거래 NFT 판매 등으로 제작사는 수수료를 챙긴다. 이용자가 거래를 할 때마다 일명 아이템을 봉인하는 작업야하는데 봉인을 위해선 별도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이것도 게임 개발사의 수익 모델이다.

게임 캐릭터 및 상품을 NFT로 한정 판매하는 것 또한 기존 게임과 차별화된다. 보통 모바일 게임에서 새 캐릭터가 나오면 이용자는 돈으로 해당 캐릭터를 계속 살 수 있다. 하지만 링게임즈는 해당 콘텐츠를 시즌 별로 캐릭터별로 한정 판매한다. 나중에 특정 캐릭터나 아이템의 인기가 높아지면 해당 콘텐츠의 가격은 올라간다. 이를 통해 이용자도 돈을 벌 수 있다. 링게임즈는 장기적으로는 이런 게임 내 NFT를 지식재산권(IP) 사업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게임 캐릭터를 단순히 현금 가치로 판단하거나 활용가치로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아이템을 인증하고 수집하고 싶다'는 수요가 있겠죠."
P2E 허용하는 글로벌 시장 노린다


NFT와 미소녀 캐릭터의 결합으로 스텔라 판타지는 벌써부터 팬덤을 결집하고 있다. 게임 정식 서비스 전에 북미,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전세계 게임 애호가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디스코드에 2만 3000명 정도 모여있는데 국가·언어별 방이 만들어져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 9월 1차 민팅(NFT 출시)에서 1800여개 NFT를 민팅했는데 완판됐다"고 덧붙였다.

스텔라 판타지는 전세계 가장 큰 블록체인 중 하나인 바이낸스 체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연내에는 이더리움 체인을 추가할 예정이며 향후 다른 여러 체인에서 게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더블록 산하 리서치기관인 '더 블록 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12월 21일 기준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에 유입된 벤처 자금은 44억 7700만 달러로 전년(4200만달러) 대비 100배 이상 급증했다.


아쉽지만 국내에서는 스텔라 판타지를 만나볼 수 없다. 현행법상 P2E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게임물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사행성 게임'을 금하고 있다. 게임을 통해 획득한 결과물을 환전하거나 환전을 알선하는 행위도 막고 있다.

링게임즈를 비롯해 국내 게임회사들은 P2E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링게임즈 역시 우선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화를 한 뒤 상황을 봐서 국내 서비스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아 600만달러(약 84억원) 규모의 프라이빗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회사이자 클레이튼 메인넷 개발사인 ‘크러스트 유니버스’, 블록체인 게임 퍼블리셔 ‘애니모카 브랜즈’, 블록체인 게임 기업 ‘플라네타리움’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애니모카 브랜즈는 엑시인피니티 투자자로 홍콩의 가장 큰 크립토 투자회사로 알려져 있다.

"게임을 블록체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지금까지 해외에서 IR를 220번 정도 했어요. 이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걸 만드려고 하는지 홍보를 계속 했죠."
"콘텐츠 흡수하며 내공 쌓아야"
국내에서 NFT 기반 수집형 RPG은 전에 없던 시도다. 윤 대표는 '창작자' 정신을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도 항상 무언가를 보라고 조언한다. 창작자로서 내공을 평소에 꾸준히 축적해야한다는 취지에서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 최근 인기를 끈 일본 만화는 신인 작가의 작품이이에요. 창작자들은 자기 내면에 감명받은 어떤 것들을 쌓아 글, 아트, 프로그램 등으로 재창조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결국 고갈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으로 필요하죠. 일에 치여서 이를 게을리하면 퍼포먼스나 발상이 떨어지기 쉬워요. 그래서 이 분야의 직업 수명이 길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죠. 게임, 영화 등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무한한 나선을 올라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내공을 쌓아 경쟁력을 계속 길러야 합니다.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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