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의 한국 상륙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2014년 애플페이 출시 후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해묵은 이슈'지만, 이번에는 구체적 정황이 포착돼 연내 도입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번엔 진짜? '시점'까지 나왔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페이 서비스가 연내 시행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현대카드의 약관 이미지 파일이 유출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고 있다.해당 약관에는 '현대카드 주식회사가 가입고객에게 제공하는 애플페이 결제서비스'라는 내용이 담겼다. '본인의 모바일 기기에 설치된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오프라인 및 온라인 가맹점에서 결제승인 절차를 수행하는 서비스'라는 설명도 들어갔다.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구체적인 약관의 시행시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유출된 내용에 따르면 애플페이는 다음달인 '11월30일'부터 시행된다. 이 문구를 두고 애플페이가 이제 국내에 정식 서비스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현재 해당 약관의 진위 여부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서비스 제공자인 애플과 현대카드가 모두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취재 결과 애플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고, 현대카드 관계자 역시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애플의 유별난 '비밀주의' 영향?
애플의 '비밀주의'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보기술(IT) 업계 그 어떤 기업보다도 보안을 중요시한다.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지난달 24일 개점한 애플스토어 잠실점(4호점)에 대한 소문은 이미 지난해 8월부터 퍼졌다. 당시 홀리스터 롯데월드몰 매장 철수와 함께 나온 소문으로, 애플스토어 여의도점(2호점)과 입점 경쟁을 펼쳤던 잠실 롯데월드몰에 신규 매장이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올해 2월 애플 홈페이지에 '동서울' 지역 인력 채용 공고가 게시되고, 이어 8월 잠실 롯데월드몰에 애플 로고가 새겨진 내부 자재가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소문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애플은 지난달 14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화하기 전날까지도 매장 오픈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함구했다.
애플은 고(故) 스티브 잡스의 철학에 따라 유별난 비밀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애플의 전직 직원들을 인터뷰한 저서 '인사이드 애플(Inside Apple)'을 보면 애플은 신입 개발자에게 '가짜 제품' 개발을 맡기기도 한다.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 '진짜 제품'은 손도 못대게 하는 것이다.
협력사와 직원들에게 악독한 수준의 비밀 유지 계약(NDA·Non Disclosure Agreement)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애플의 직원들은 친구나 동료,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업무 내용을 누설하지 않을 것을 서약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게 된다. 과거 애플의 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GT어드반스드테크놀로지스'의 경우 비밀유지 계약 한 건이 깨질 때마다 5000만달러(약 559억원)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해 아이폰13 세부 정보와 회의 내용 등이 유출되자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전사 이메일을 통해 "유출한 자들을 식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 기밀 정보를 유출한 사람들은 애플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분노했다.
과거 애플 제품에 대한 유출이 발각될 경우 해고되거나 일부 체포되기도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연초 흘러나온 애플-현대자동차그룹의 '애플카 협업설' 중단 배경에는 비밀 누설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업계는 추측했다. 당시 미 CNBC는 "애플과 거래하는 기업은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 현대차는 이번 사태로 교훈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의 직원조차도 회사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잘 모를 정도다. 미국 IT 회사에 다니는 한 직원은 "애플의 모든 부서는 필요에 따라 파편처럼 쪼개져 있고, 업무 역시 퍼즐 조각처럼 분리돼 있다. 필요한 인원이 필요한 내용을 '점' 형태로 이어 업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완성된 모습은 최고 경영진만 알 수 있는 셈이다. 이같은 애플의 비밀주의는 소비자들에게 애플 신제품에 대한 정보를 갈망하고 관심도를 높이는 마케팅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정황 뚜렷한데"…국내 상륙 기대감
애플페이 도입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진짜 국내에 애플페이가 들어올까? 현재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는 73개국에 달한다. 아시아에서도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심지어 중국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 근거리무선통신(NFC) 단말기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지 않은 점이 한 원인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거의 대부분 식당과 가게에서 카드를 단말기에 직접 끼워 결제하는 IC단말기가 보급돼 있다. 스마트폰을 카드 단말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간편하게 물건값을 낼 수 있는 NFC단말기는 스타벅스를 비롯해 이마트, GS25 등 대형 가맹점 위주로 사용 가능하다. 대부분의 일반 매장에서는 비싼 카드 단말기 대신 조금 더 저렴한 IC단말기를 사용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NFC 단말기를 보유한 가맹점은 10만개 수준으로 보급률은 3%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낮은 NFC 단말기 보급률과 애플 자체의 높은 수수료 문제 등으로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을 느낀 국내 카드사들은 애플페이 도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애플페이 도입설은 지난 8월 현대카드 독점 계약 루머가 확산하면서 재점화됐다. 꽤 구체적인 진행 상황도 포착된다. 대형 밴(VAN)사 6곳과 카드단말기 제조사 등이 계약을 맺고 애플페이를 위한 NFC 단말기 제조 및 시스템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국내 대형 VAN사 관계자 역시 애플이나 현대카드와 똑같은 반응을 내놨다. 개발하고 있는 단말기도, 애플페이 도입 여부도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애플과 현대카드, 밴(VAN) 업계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이용자들은 최근 아이폰 월렛(지갑) 서비스에 '애플페이 시작하기' 메뉴가 추가되는 등 구체적 정황이 보이면서 애플페이 출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12일 아이폰용 운영체제 iOS16 업데이트 이후 월렛(지갑) 서비스에 '애플페이 시작하기' 메뉴가 처음으로 추가됐다. 또한 애플 홈페이지 내 한국 미디어 서비스 이용 약관에 "애플 페이를 사용하여 귀하가 선택한 애플 지갑상의 지불 방법에 청구할 수 있다"는 문장도 새로 발견됐다. 이같은 단서가 나오면서 애플페이 도입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유출된 현대카드 약관에 따라 정말 다음달 30일 애플페이 서비스가 도입되면 애플의 공식화 시기는 아마 서비스 개시 약 보름 전후로 예상된다. 애플은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상품 정보를 철저히 숨긴 다음 임박해서 공개하는 '게릴라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그간 애플은 국내에서도 신규 매장이나 제품 출시일 등을 공식화하기 전 짧게는 열흘, 길게는 2주 정도 기간을 앞두고 정식 공개했다.
약관에 명시된 대로 진짜 애플페이가 도입된다면 애플의 공식화 시기는 다음달 중순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러한 애플의 속성을 잘 아는 사용자들은 대부분 "일단 다음달까지 기다려보자"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진짜 애플페이 도입 여부를 공식 확인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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