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7일 11: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카카오가 잔인한 10월을 보내고 있다. 카카오와 모든 계열사들의 주가가 고점 대비 절반 이상 폭락한 가운데 상장사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인 라이온하트스튜디오(라이온하트)의 중복 상장 논란이 자본시장을 뒤흔들었다. 라이온하트가 결국 상장 절차를 멈추며 일부 진화했지만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면서 전례없는 위기에 처했다.
두 사건은 코로나19 팬더믹 기간 자본시장에 쌓아올려진 카카오라는 '바벨탑'이 흔들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코로나19기간 카카오의 자산 규모는 2019년 10조원에서 올해 32조원까지 늘어나 재계 15위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기간 계열사 수도 71곳에서 138곳으로 늘었다. 두개의 축이 카카오 제국을 지탱했다. 카카오톡이란 굳건한 플랫폼을 보유한 사업적 기반이 한 축이었고,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나머지 한 축이었다.
풋옵션 행사 둔 카카오-라이온하트 '머니게임' 촌극
증시 침체 속 위태위태했던 두 축의 연계가 허물어진 기폭제는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이자 대형 모바일게임 '오딘'의 제작사인 라이온하트의 상장을 둘러싼 잡음이다. 카카오게임즈와 라이온하트 경영진이 중복상장 문제가 주가 하락과 주주들의 불만에 직접적 원인임을 알면서도 이를 가장 적절하지 못한 시점에 강행하려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여기엔 카카오게임즈와 라이온하트 인수 과정에서 있었던 두 회사간 계약(풋옵션)이 깊게 연관돼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해 1조2000억원을 투입해 라이온하트 지분 30.37%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카카오게임즈가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 총 200억원을 초기 투자해 지분율을 21.6%까지 확보했던 점을 고려하면 해당 거래로 과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갖게 됐다. 라이온하트가 지난해 6월 출시한 오딘이 연간 5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대작 게임으로 급성장하면서 카카오게임즈는 4~5년이면 투자금을 전부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섰다.
해당 거래는 현금과 경영권 지분이 오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카카오게임즈는 1조2000억원을 투입함과 동시에 라이온하트의 경영진에게 상장(IPO)을 통해 경영진들의 나머지 지분(36%)의 투자금 회수를 약속했다. 만약 카카오가 라이온하트의 IPO에 동의하지 않으면 카카오 측은 직전해(2021년 3분기~2022년 2분기) 순이익인 약 2127억원에 동일업종 평균 PER 배수로 경영진이 보유한 지분 36% 전량을 사주기로 했다. 공모 절차에서 가정된 PER이 25배인 점을 고려하면 카카오는 36% 추가 인수에 1조9000억원을 더 투입해야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양 측이 상장하지 않기로 '합의'할 경우 카카오가 해당 지분을 순이익 14배에 20% 한도 내에서 인수하도록 했다. 20%를 가정시 비용이 5900억원대로 뚝 떨어지게 된다.
라이온하트 경영진은 공모가 이상으로 회사가 상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부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외 변수와 증시 침체로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온하트 측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카카오가 상장을 포기하도록 유도해 25배에 지분을 파는 의사결정이다. 라이온하트가 갖은 논란에도 상장을 강행하겠다 밝힐수록 모회사인 카카오게임즈의 시가총액은 증발했고, 카카오그룹 전체가 '개미'들의 지탄에 중심에 섰다. 어찌보면 라이온하트가 상장을 무기로 카카오 측을 압박하며 목줄을 쥐고 있는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라이온하트가 상장 절차를 철회하면서도 "IPO 포기가 아닌 중단"인 점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IPO시장 유동성은 '공짜?' 카카오의 위태로운 성장
그렇다고 이를 라이온하트의 탐욕으로 볼 수 있을까. 해당 계약 조건은 여러 대형 게임사 등 경쟁사들과의 경쟁을 뚫고 카카오게임즈가 이제 막 꽃을 핀 라이온하트의 경영권을 따내기 위해 꺼낸 '무기'였다. 당시 카카오게임즈는 재무여력상 현금으로 라이온하트의 나머지 지분을 지급하는 상황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협상장에서 카카오 측은 IPO를 기정사실화 해서 라이온하트 경영진에 전체 거래가격이 2조원대가 아닌 4~5조원대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다만 M&A 협상 시기인 지난해는 이미 카카오게임즈가 증시에 안착한 시기다. 해당 계약이 불러올 중복상장 문제도 최근들어 갑자기 직면한 상황이 아닌, 당시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와 카카오의 M&A를 총괄하는 배재현 부사장이 자발적으로 거래를 위해 테이블에 올려놓은 선택지였던 것이다. 결국 카카오의 의사결정엔 계약서에 따라 밟게될 중복상장으로 치르게 될 주주들의 반발 등 제반비용을 과소평가했거나, 알면서도 영역 확장을 위해 무시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IPO 시장을 활용한 카카오의 무한확장은 라이온하트가 끝이 아니었다. 카카오는 SM엔터테인먼트 인수과정에서도 이수만 프로듀서가 보유한 SM엔터 지분 약 18.9%를 8000억원대에 인수하는 동시에 이 프로듀서가 카카오엔터에 2000억원을 재출자해 주주가 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당시 카카오엔터의 기업가치론 11조~12조원 수준이 제시됐다. 곧 카카오엔터가 상장해 기업가치 20조원을 인정받아 출자대금이 두 배 넘게 불게 되면 이 프로듀서가 '1조원'을 챙기는 거래라는 주장이었다.
카카오가 2021년 사모펀드(PEF)운용사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웹툰 자회사인 카카오재팬(픽코마)에 600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오며 기업가치 8조8000억원을 인정받은 거래도 대표적 사례다. 추후 6000억원은 상장으로 갚을 수 있다 가정하고 경쟁사인 네이버웹툰보다 빠르게 협상을 끝내 기업가치를 앞질르는 데 열중했다. '국민MC' 유재석씨와 아티스트 유희열씨에게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투자를 유도해 인지도를 키운 것도, 유니콘이 유력한 지그재그의 경영권을 현금 한 푼 없이 인수해온 배경에도 모두 "라이언(카카오의 대표 캐릭터)만 붙이면 'IPO'는 문제 없다"는 자신감이 반영됐다. 이를 구축한 각 계열사의 임원진과 투자팀 인력들은 막대한 과실을 누리기도 했다.
여기엔 단 두 가지 가정이면 충분했다. 상장시장이 앞으로 몇 년은 더 호황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와 전국민(5174만 명)의 91%인 4743만명이 사용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카카오톡의 지위. 이번 서비스 장애로 굳건해보였던 후자까지도 흔들리면서 자본시장에선 카카오가 쌓아올린 제국이 지속가능할지를 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호황기엔 "투자 유치 협상장에 앉게만 해달라"며 카카오 임원들에 호소했던 PEF들이 이젠 "원금과 이자를 달라"며 청구서를 내밀 수도 있다.
화재도 주가증발도 본질은 "위기 대응"
카카오톡 사용자들이 데이터센터 화재를 재난이 아니라 카카오의 문제로 받아들인 원인은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다. 국내 대표 IT회사인 카카오가 유사시를 대비해 복수의 데이터센터를 갖추는 등 위기 대응 매뉴얼조차 갖추지 못한 점에 대한 질타였다. 자본시장의 우려도 동일하다. IPO를 둘러싼 주가의 등락과 대외 변수의 변화를 카카오 경영진이 정확히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IPO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이번 사고로 카카오톡의 플랫폼으로서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상황변화 아래서 카카오가 기존 성장공식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무했다는 점이 카카오가 드러낸 고질적 문제다. IPO 침체와 카카오톡을 둘러싼 대혼란이 카카오 제국의 몰락의 기점이 될 지, 내실을 되돌아볼 계기가 될 지는 이제 카카오에 몫이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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