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2 외환위기가 아닌 5가지 이유

입력 2022-10-16 17:56   수정 2022-10-17 06:59

제2종 오류(type 2 error). 통계 용어다. 경고를 발동했는데 정작 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다. 닥터 둠(Dr. Doom) 부류 비평가들이 구사하는 전략이다. 위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포인트다. 위기가 현실로 닥치면 ‘대박’이다. 위기가 안 와도 남는 장사다. 나름 근거 있는 걱정을 제시한 것이니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1500원도 시간문제라는 주의보가 겁을 준다. 우리 경제가 금방 두 동강 날 것 같다. 급기야 신문 사설 제목에 제2 외환위기설이 등장한다. 국내 외환시장 논쟁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

이 판에 외환시장 탄력성·회복력 운운하면 ‘어용’ 낙관론으로 몰매 맞을 분위기다. 환율이 치솟는다고 외환위기는 아니다. 이자를 아무리 높게 줘도 달러를 구할 수 없을 때가 위기다. 1997년, 2008년이 그랬다. 현재 외환시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저수지다. 탄력성을 보여주는 징표가 여러 개다.

① 우선 내국인 순대외금융자산이 7441억달러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전(-783억달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1406억달러)에 비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한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 교란 시 해외 투자가 국내로 환류된다는 국제통화기금(IMF) 연구도 있다. 자본 유출 흐름을 상쇄해 대외 안정성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이미 해외에서 이자·배당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② 외화자금 조달시장 작동에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달러화 ‘가뭄’을 가늠하는 지표는 원·달러 스와프레이트다. 달러가 부족하면 스와프레이트 마이너스(-) 폭이 커진다. 지난 13일 우리나라 스와프레이트(3개월물)는 -144다. 같은 날 유로존 -322, 일본 -478, 스위스 -434 등이다. 우리나라 달러 조달 여건이 상설 통화스와프국보다 한결 양호한 것이다.

③ 국내 은행 외화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도 눈여겨볼 수치다. 위기가 터지면 외화 유출 규모가 단기간에 급증한다. 이런 악조건에서 은행은 최소 30일간 스스로 버텨야 한다. 2008년 위기 이후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도입한 룰이다. 은행이 고유동성 외화자산을 보유하도록 의무화해 돌발적인 유출 사태에 대응한다는 취지다. 국내 은행의 비율은 122.8%다. 당국 가이드라인(80%)보다 훨씬 높다.

④ 실질실효환율 움직임에도 이상 신호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실질실효환율은 124였다. 원화의 실질 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상태였다. 원화 값을 떨어뜨려야 경상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질질 버티다 투기 세력의 공격 타깃이 됐다. 실력에 걸맞지 않은 원화 강세를 고집하다가 된통 봉변당한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계산한 8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108.0이다. 명목환율이 최고치를 경신 중이지만 투기 세력이 먹잇감으로 노리기에는 고평가 정도가 미미하다.

⑤ 9월 21일 한·미 두 정상 간 합의 내용도 주목할 포인트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장치를 실행하는 데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합의했다. 이 장치가 구체화하면 한·미 간 통화스와프보다 요긴한 채널이 될 수 있다.

“금융위기는 사람들이 금융 안정성에 의구심을 가질 때 발생한다.”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더글러스 다이아몬드와 필립 딥비그가 연구한 핵심 주장이다. 정부와 한은은 시장심리 안정화에 전력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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