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가 도입 후 3년이 지나 정착되면서 제도 도입 전에는 불쾌감을 초래하는 단순한 실수, 실례 정도로 넘어가던 행위에 대한 신고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 사례다. 지사장이 100여명의 영업사원이 참여한 워크샵에서 '영업사원 개인의 역량과 나이를 고려하여 고객을 배정한다'는 영업 정책을 소개하면서,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원 A에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고, 답변이 없자 “How old are you?”라고 영어로 재차 질문을 했다. 워크샵이 끝나자 A는 지사장의 질문으로 심한 불쾌함을 느꼈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
우선 지사장 질문은 기업의 중간 리더에게 요구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청중 집중도를 높이려고 첫 질문을 했고, 또 첫 질문에 A가 대답을 하지 않아 분위기를 띄우려 영어로 두 번째 질문을 했다는 것이 지사장 변명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민감해 하는 나이를 소재로, 공개석상에서 특정인에게 장난스럽게 질문하는 것은 리더로서 삼가야 할 실수이자 실례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이 실수 또는 실례라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모든 직장 내의 실수, 실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어 행위자가 징계나 전보 등의 불이익 조치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사용자나 그 친인척에게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까지 부과될 수 있는데, 당국의 과다한 조사와 제재 이전에 직장 내 괴롭힘의 한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종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최근 필자가 속한 로펌은 '타인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동 등으로 회사 내에서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을 주제로 웨비나를 열었는데, 단순한 실수나 실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직원에 관한 사전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신고는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반감에서 기인하거나, 본인에 불리한 인사 평가·징계·계약 종료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당사자간 갈등이 심해 공정한 처리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사례로 돌아가, 우선 기업이 지사장 질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괴롭힘 성립 요건 중 '업무의 적정 범위'를 넘어야 한다는 것과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라는 점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저, 발표시 집중도를 높이려고 나이를 물어보는 행위 자체는 비합리적이지 않고 사회통념상 허용되므로 '업무의 적정 범위' 내라고 볼 여지가 많다(광주지방법원 2021. 2. 5. 선고 2020가합52585 판결의 취지). 다른 판결에서 법원은 정상적인 업무 수행 중 우발적으로 발생하였는지, 일회적인지도 '업무의 적정 범위'를 넘는지 판단에 고려한 경우가 있는데(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 19. 선고 2021나42155 판결), 이에 따르더라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A에게 불쾌감을 넘어 '정신적 고통'이 인정되는지도 의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서 정신적 고통은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 즉,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다. A가 주관적으로 불쾌감을 느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위 사례에서 기업은 참석자 중 19명을 상대로 지사장 질문에 대한 의견 조사를 했는데, "비하발언 해당" 5명, "비하발언 아님" 5명, "판단 유보" 9명으로 의견이 갈렸다. 법원은 이 정도로는 A의 객관적인 정신적 고통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법적 검토와는 별개로 적정한 인사운영을 위해서도 기업이 지사장 질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해 징계 및 인사조치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그렇게 하면 A의 불만을 잠재우고 직장 내 괴롭힘 근절에 관한 기업의 강력한 의지를 알리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더 크다. 무엇보다 앞으로 다른 무리한 신고가 이어져 막대한 시간과 비용 낭비, 불필요한 갈등이 생길 위험이 있다. 기업이 지사장 질문 정도의 단순한 실수, 실례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선례를 남긴 것의 당연한 귀결이다.
결국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기업은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 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철저한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노력 이전에 사려 깊고 냉철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직원의 단순한 실수, 실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매도하거나, 성급하게 일벌백계하여 경직되고 냉소적인 기업문화를 조장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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