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퍼, 오늘회, 메쉬코리아 등 유명 유통·패션 플랫폼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사업권을 매각하고 있다. 수수료를 낮춘 경쟁 플랫폼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까닭이다. 한 패션플랫폼 대표는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고 봤던 온라인 플랫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1세대 패션플랫폼의 퇴장
19일 플랫폼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시작해 ‘1세대 패션플랫폼’으로 분류되는 힙합퍼는 이달 31일을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힙합퍼의 모회사 바바패션은 지난 8월부터 힙합퍼 매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상당수 투자자가 ‘플랫폼 시장이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고 여겨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바바패션이 한 대형 패션기업에 힙합퍼 인수 여부를 타진했으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해당 기업이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힙합퍼는 무신사와 함께 1세대 온라인숍으로 인기가 높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힙합 문화를 좋아하는 10·20대 사이에서 의류와 액세서리를 사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8년 8월 패션기업인 바바패션이 인수하면서 서비스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고가 스트리트패션 상품을 판매하면서 20·30대 소비자를 겨냥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사업을 접기로 했다. 힙합퍼의 매출은 200억원, 거래액은 1000억원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스트리트패션을 기반으로 한 무신사 거래액이 2조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고가 명품 판매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지만 발란 등 명품을 전문으로 한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차별화 포인트가 사라졌다.
힙합퍼의 모기업 바바패션은 2019년부터 경영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바바패션의 올해 종업원 수는 328명으로 작년(630명)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2019년 11월 수입 브랜드 에센셜을 철수한 데 이어 2020년에는 아이잗바바 등을 새로 단장했다. 바바패션 관계자는 "본사에서 고용한 근로자의 소속을 개인사업자로 바꾼 것"이라며 "정리해고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회원 75만 명을 보유한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회’는 지난달 300여 개 협력업체에 대금 40억원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서비스를 중단한 뒤 최근 재개하기도 했다.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의 운영사인 메쉬코리아는 자금난에 허덕이다 경영권 매각에 나섰다.
“플랫폼만으로 돈 버는 시대 끝났다”
한때 국내 유통·패션 시장을 장악할 것처럼 여겨지던 플랫폼기업들은 올해 들어 줄줄이 휘청거리고 있다. 명품 플랫폼 ‘빅3’로 통하는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의 기업가치는 자본시장 급랭 여파로 절반 밑으로 내려갔다.발란은 800억~1000억원을 목표로 투자를 유치했으나, 최근 250억원을 투자받는 데 그쳤다. 기업가치는 8000억원에서 3000억원 수준으로 조정됐다.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와 지그재그 등은 할인 쿠폰을 남발하며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쿠폰을 배포하면 판매자와 부담을 나누는 구조여서 입점 업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플랫폼기업들은 이제 확장에 방점을 두기보다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추세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사업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체브랜드(PB)를 내놓거나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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