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금개혁에는 두 가지 근본 쟁점이 뇌관처럼 버티고 있다. 우선 ‘국가지급보장 법제화’ 논란이 필연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국민연금의 핵심 문제가 예고된 기금 고갈인 만큼 10년도 더 된 이 주장은 또 나오게 돼 있다. 여의도발로 기억하는 것만 해도, 2012년 19대 국회로 거슬러가는 초대형 폭탄이다. 기초연금 확대안과 함께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법안이 그때 나왔다. 지금이나 당시나 선심 남발 포퓰리즘에는 여야 구별이 없다.
그래도 즉각 법제화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국회가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다. 어느덧 가입자가 2229만 명에 달하지만 비가입자도 적지 않아 균형·공정 문제가 따른다. 나아가 부실 구조는 둔 채 지급보장만 하면 그 돈은 또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해법 없이는 무책임한 공론이다. 더구나 ‘사회적 부조 시스템’을 주저 없이 ‘연금’이라고 한 것부터 시작해 국민연금의 설계·시행·운용·관리 전반에 걸친 정책 오류에 대한 책임 규명과 정부 차원의 사과도 없이 혈세를 함부로 투입할 수는 없다. 국가 지급보장 논의에 따르는 이 ‘3대 전제조건’은 지금도 그대로다.
지급보장 명문화는 2012년 말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복지 공약으로 커졌다. 국가의 지급보장이 쉽게 가능하다면 국민연금 개혁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법 한 줄만 만들면 바로 ‘개혁 끝’ 아닌가. 돈이야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면 연금개혁이 어려울 게 뭔가. 지속가능하게 하고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자는 개혁 논의가 세 부담을 키우고 빚더미 재정을 넘겨주는 조삼모사의 ‘세대 착취’로 호도돼선 안 된다. 최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명문화를 검토할 수 있다”며 10년 넘은 그 논란거리를 또 살려냈다. 검토라고 했지만, 법제화 언급의 파장을 간과했다면 신중치 못했다. 당장 나라살림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동의할까. “국민연금 주무부처는 아무래도 기재부여야 한다”고 할 전문가가 늘어나게 됐다.
진정 법제화가 필요한 것은 위기의 기금을 정부 예산인 양 마구 손대려는 정치권의 간섭 배제다. 기금 수익률 높이기도 사실은 여기에 더 달렸다. 1000조원에 접근하는 기금의 분할 경쟁 운용, 전문성·독립성·중립성 강화책 등과 함께 이번에 정치권을 확실하게 떼어놓아야 한다. 이런 원칙만 제대로 세워도 고갈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큰 뇌관은 성격이 다른 공무원·군인연금과의 통합론이다. 이들 ‘진짜 연금’이 재정의 블랙홀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시 개혁은 좋지만, 하나로 묶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적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기여금, 공무원 임용 조건 등을 도외시하면 전·현직 공무원들이 통합에 동의할까. 기득권 프레임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각각의 수령 연금을 그대로 간다면 통합할 이유가 없고, 획일적 형평 논리로 묶는다면 연금개혁 명분이 약해진다. 통합론의 다른 복병은 사학연금이다. 2049년 고갈이 예고된 사학연금까지 ‘우리도!’라며 좌우 교원단체가 연대라도 하면 하나로 묶어줄 것인가.
재집권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최근 발동 건 프랑스 연금개혁에 세 가지 시사점이 보인다. 먼저 더 내고(연금보험료율 인상), 덜 받으며(지급률 인하), 수령 연령을 늦추는 고통을 정년연장과 연계하는 것이다. ‘증세·나랏빚 증가 배제 원칙’도 의미 심장하다. 프랑스 방식에서 더 주목되는 것은 의회가 아니라 정부 주도라는 점이다.
이번 개혁에서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20년, 확실만 하다면 10년이라도 늦추고, 공무원·군인연금은 재정 지원 규모를 현 수준에서 동결만 해도 우선은 의미 있는 성과가 된다고 본다. 각 연금 모두 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추계를 해야 하고, 그때마다 새 변수를 반영해 개선안도 강구해야 하니 어차피 영구 개혁 과제다. 문재인 정부는 이 책무를 이행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 특위가 한 번에 완벽한 묘수를 찾으려 들지 않길 바란다.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것도 개혁 과정에서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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