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기획 단계에서 초기 개발비와 인건비를 따지지 않는다. 의사결정 과정을 10분의 1로 줄이고 ‘부장’급인 대표 한 명이 프로젝트 실행 여부를 결정한다. LG전자가 “10년 뒤 먹고살 거리를 고민하겠다”며 설립한 1호 사내벤처기업(CIC) ‘스프라우트컴퍼니’의 운영 방식이다.
이곳에선 냉장고, 세탁기처럼 이름난 제품군을 다루지 않는다.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제품군을 발굴하는 게 목표다. 신상윤 스프라우트컴퍼니 대표는 “비밀리에 가동하고 있는 신제품 프로젝트가 10여 개에 달한다”며 “애플 아이폰처럼 세상에 없던 제품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올 연말을 기점으로 CIC 사업을 본격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LG전자 CIC는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 산하 조직이다. ‘공룡처럼 엉덩이가 무거운 조직을 바꿔보자’며 지난해 실험적으로 출범한 조직을 핵심 사업부로 격상했다. ‘CIC’라고 부르는 것은 별도 기업처럼 조직의 장이 모든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어서다.
CIC 출범 초기만 해도 LG전자 안팎에서 ‘이 조직이 정말 굴러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신 대표는 “식물 생활가전 ‘LG 틔운’과 ‘LG 틔운 미니’를 출시한 뒤로는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기획·구상을 하고 1년도 안 돼 신제품이 나온 첫 사례여서 모두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통상 신제품 기획 후 제품 개발, 출시까지는 빨라야 2~3년이 걸린다. 실패해도 좋으니 마음껏 고민해볼 수 있는 터전이 생겼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신 대표는 “본사 간섭을 받지 않고 경영 의사결정 전반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요즘은 2024년 선보일 제품과 서비스 세 가지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LG전자는 CIC가 역량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 오픈 이노베이션, 투자 등을 추진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했다. CIC 수와 투자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적으로 LG전자의 ‘생활가전 시장 1위’ 주도권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회사 관계자는 “디지털,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각종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곧장 실행에 옮겨보고 있다”며 “CIC로 10년 뒤, 20년 뒤 먹거리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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