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3분기(7~9월)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영업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란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이달 들어 SK하이닉스 보고서를 낸 증권사 중에 IBK 투자증권을 제외한 하이투자증권(-3860억원), KB증권(-2670억원), 케이프투자증권(-2500억원), 이베스트투자증권(-3700억원), 키움증권(-390억원) 등이 낸드플래시 영업적자를 예상했다.
SK하이닉스 안팎에선 3분기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영업적자까진 아니지만 '이븐(even)', 그러니까 이익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4분기(10~12월)엔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적자가 유력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SK하이닉스는 2021년 2분기 이후 여섯 분기 만에 낸드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소비 위축을 직면한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 투자를 줄였다. 자연스럽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데이터센터업체들도 과거보다 보수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낸드플래시 수요가 감소했고 가격(PC·USB용 범용 제품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7월 4.81달러에서 지난 9월 4.30달러로 10.6% 떨어졌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익성 하락을 피할 수 없다. 4분기 상황에 대해선 '더 암울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이 3분기 대비 20% 정도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두 번째는 치열한 경쟁에 따른 공급 과잉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인텔 인수), 키오시아(일본), 웨스턴디지털(미국), 마이크론(미국)이 경쟁하고 있다. 최근엔 양쯔메모리(YMTC) 같은 중국 업체들도 합류했다. 총 6개 업체가 회사 명운을 걸고 대결을 벌이고 있다. 3강(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체제로 굳어진 D램 시장과 상황이 좀 다르다.
6개 기업의 경영 전략과 시장 전망, 제품 원가, 기술력 등은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공급 사이드가 수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 공급과 수요의 엇박자가 이어지고 상당 기간 빙하기가 지속된다. 실제 SK하이닉스는 2018년 4분기부터 11분기 연속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장 규모가 D램의 60~70% 수준인데 6개 업체가 경쟁하다 보니 개별 기업의 매출이 D램보다 적다. 3~5위권 업체 입장에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게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최근 주요 낸드플래시 기업들이 증설 투자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2020년까지 업체들은 낸드플래시가 들어가는 기업용 SSD(데이터 저장장치), 데이터센터용 SSD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봤다. 적극적인 증설 투자가 이어졌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2020년 6월 평택 낸드플래시 라인에 8조원을 투자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사업부(솔리다임)를 총 90억달러(당시 가치로 10조3000억원)에 인수했다.
믿었던 SSD마저 주춤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SSD 시장 규모는 올해 358억6900만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2021년(339억1800만 달러)보다 5.8%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내년 시장 규모는 337억100만 달러로 2021년보다 위축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가에서 10% 이상 차이가 나고 가격 10% 차이 나니까 경쟁사들보다 20% 이상 격차를 벌린 것"이라며 "우리가 해왔던 방식이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낸드 불황에도 삼성전자가 급격하게 공급량을 조절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불황을 기회로 삼아 경쟁사들에 타격을 가하는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이익 규모를 줄이더라도 경쟁사를 대규모 적자 상태로 몰아넣어 기술 및 투자 부문에서 초격차를 벌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분간 낸드플래시 공급이 크게 줄지 않고 가격은 하락하는 '빙하기'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D램은 하지 않고 낸드 사업만 하는 일본 키오시아에 내년부터 본격적인 위기가 닥칠 것이란 얘기도 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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