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어록엔 2차전지 안돼"…'갈라파고스 규제'에 시장 뺏긴 한국

입력 2022-10-23 17:19   수정 2022-10-23 19:28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80% 이상)을 자랑하는 한국의 디지털 도어록이 정작 글로벌 시장에서는 급격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디지털 도어록은 주택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홈 산업의 주요 품목이다. 도어록에 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 사용을 금지한 낡은 규제가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규제에 멈춘 디지털 도어록 혁신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 의원에 따르면 2007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정한 전기생활용품안전법 시행규칙 부속 안전기준은 디지털 도어록 주 전원으로 건전지 또는 어댑터의 직류전원만 쓰도록 했다.


따라서 대용량 리튬이온 전지 등 2차전지는 도어록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대부분의 도어록은 AA건전지 4~8개를 매번 교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전기차는 물론 노트북, 무선청소기 등 생활 속 대부분 전자제품에 2차전지 사용이 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스마트홈 업계는 이 같은 규제 때문에 도어록에 문을 여닫는 기능 외 블랙박스(보안 카메라)나 원격제어 등 IoT 기술을 접목한 신제품 출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본다. 건전지만으로는 이런 첨단 기능이 요구하는 전력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로 인해 신제품 개발에 차질을 빚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스마트홈 산업의 성장성을 눈여겨보고 지난 7월 삼성SDS 홈IoT 사업부를 인수한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직방은 삼성SDS가 출시한 기존 도어록에 다양한 Io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도어록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2차전지 사용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디지털 도어록 보급이 급격히 늘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 유럽 등 해외엔 한국과 같은 규제가 없다. 2차전지를 채용해 다양한 IoT 기술을 접목한 도어록 제품도 이미 등장했다.


중국 사오미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 도어록에는 방문자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촬영하는 보안카메라는 물론, 대화를 위한 스피커, 얼굴인식, 원격제어 등 기능이 탑재돼 있다. 월패드 등 고가의 홈네트워크 시스템 없이 도어록만으로 이런 기능들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게한 것이다.
중국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뒷걸음질'
자연히 한국산 디지털 도어록의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8년 3467만달러였던 한국의 대(對)중국 디지털 도어록 수출액은 2020년 796만달러로 2년 새 77% 급감했다. 해당 기간 중국 수입시장에서 점유율 순위도 1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세계시장에서도 한국의 디지털 도어록 수출액은 2017년 1억1918만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8238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감소세가 뚜렷하다. 반면 수입액은 같은 기간 4376만달러에서 9098만달러로 껑충 뛰며 수출액을 넘어섰다.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산 도어록을 ‘직구’해 설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네이버쇼핑과 쿠팡, 11번가 등 국내 인터넷 오픈마켓에는 2차전지를 쓰는 샤오미 도어록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한 사용자는 “스마트폰과 연동해 다양한 기능을 쉽게 활용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설치 후기를 남겼다.

그동안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사업자는 정부의 규제 애로 민원 창구인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수차례 규제 개선을 요청했다. 2019년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안전기준 담당 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에 2차전지를 도어록 전원 방식으로 추가해 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표원은 “리튬이온 배터리는 고온·외부충격·과충전 상태 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건의를 일축했다. 화재 시에도 도어록이 정상 작동하려면 270도의 고온에서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2차전지의 경우 160~170도에서 폭발이 나타났다는 것이 국표원 설명이다.

국표원 관계자는 “국내 안전기준은 국내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중국에는 중국 기준을 따르면 된다”며 “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뒤처지는 문제는 2차전지를 채용한 제품을 국내 대신 해외에 출시하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국에서도 판매 실적이 없는 제품을 해외 소비자들이 사용할 리 만무하다”며 “국내에서도 해외산 직구까지 할 정도로 충분한 수요가 있는 제품을 출시하지 못하게 하는 건 역차별”이라고 반박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화재 위험 역시 주변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배터리가 자동으로 분리되도록 하는 탈착식 설계로 해결할 수 있다"며 "오로지 도어록에만 높은 수준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불합리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양향자 의원은 “과거의 낡은 제도와 정책이 국내 산업 경쟁력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는 스마트홈 업계가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끌 수 있도록 시대에 맞는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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