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취임 2개월 만인 1979년 10월 경기 침체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단번에 금리를 4%포인트 올렸다. 연 11.5%이던 기준금리는 하루아침에 연 15.5%가 됐다. 당시 언론들은 이 조치를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불렀다. 볼커는 1981년 6월 기준금리를 연 21.5%까지 높였다. “볼커가 자기 키만큼 금리를 올렸다”는 웃을 수 없는 농담이 유행했다. 이런 고금리는 3년이나 지속됐다.
이자율이 연 20% 선으로 치솟으며 미국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다. 기업들이 줄도산했지만 볼커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당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 예일대 교수가 사석에서 금리를 내려달라고 요청하자 볼커는 이렇게 답했다. “Fed는 금리를 정하지 않았다. 시장이 정했다.”
이 정도 고금리에 물가가 안 잡힐 수 없었다. 15%에 육박하던 물가는 1982년 4%로 낮아졌고, 1983년 2%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마침내 폴커가 긴축을 풀자 미국 경제는 빠르게 되살아났다. 미 증시 역사상 최고의 강세장이 펼쳐졌다. 1990년 일본의 버블붕괴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에도 끄떡없을 만큼 미국 경제는 튼튼해졌다.
그는 물가가 떨어질 때까지 긴축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의 ‘keep at it’이라는 말도 했다. 다름 아닌 폴커의 자서전 제목이다. 파월 의장은 9월 21일 FOMC 정례회의에서도 같은 표현을 썼다.
Fed는 코로나19 시국에 너무 많은 돈을 풀었고, 긴축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 자극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파월 의장이 ‘제2의 볼커’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건 확실한 것 같다. Fed의 기조 변화를 섣불리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고금리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정부도 개인도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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