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발령은 징계일까, 아닐까

입력 2022-10-25 17:32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한 비위행위 조사가 예정되어 있는 경우, 근로자의 업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경우, 회사의 경영상황에 따라 근로자의 근로제공을 수령하기 어려운 경우 등 다양한 경우에 근로자에게 대기발령을 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대기발령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대기발령을 둘러싸고 그 법적 성격, 대기발령의 기간, 대기발령 기간 중의 임금지급 의무 등 다양한 쟁점이 도출되고 있다. 이에 판례를 중심으로 대기발령을 둘러싼 제반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대기발령의 법적 성격은 무엇일까? 특히 대기발령 기간 동안 임금삭감, 승진 및 승급제한, 인사평가 하향 등 불이익을 수반하는 대기발령의 경우 근로자들이 이를 별도의 징계처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근로자에 대한 직위해제는…일시적으로 당해 근로자에게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잠정적인 조치로서의 보직의 해제를 의미하므로 과거 근로자의 비위행위에 대하여 기업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징벌적 제재로서의 징계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3두8210 판결 등)고 판시하여 대기발령이 징계처분과는 구별되는 점을 명확히 한 바 있다(근로자에게 직위를 부여하지 않는 직위해제와 대기발령은 실질상 동일한 인사권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징계와 구분되는 대기발령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임금삭감 등의 불이익을 수반한다면 이는 불이익한 인사명령으로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의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이하 '부당해고등')에 해당하여, 동법 제28조 제1항의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노동위원회 판정 및 법원 판결의 일관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대기발령이 징계처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당해고등 구제신청의 대상이 되며,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인사권 행사로서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기발령의 정당성은 어떻게 판단하여야 할까?

대기발령을 포함한 인사명령은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인사명령에 대해서는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여야 하며, 이것이 근로기준법 등에 위반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2. 12. 26. 선고 2000두8011 판결). 대기발령과 관련하여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발령이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 내에 속하는지 여부는 대기발령의 업무상의 필요성과 그에 따른 근로자의 생활상의 불이익과의 비교교량, 근로자와의 협의 등 대기발령을 하는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의 여부 등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다만, 근로자 본인과 성실한 협의절차를 거쳤는지의 여부는 정당한 인사권의 행사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라고는 할 수 있으나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만으로 대기발령이 권리남용에 해당되어 당연히 무효가 된다고는 볼 수 없다(대법원 2002. 12. 26. 선고 2000두8011판결).

이때 대기발령 사유는 사용자의 인사관리규정에 정한 사유에 한하고, 규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잠정적으로 당해 근로자에게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대기발령을 할 수 없다(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5두49016 판결). 또한, 그 대기발령의 당부는 당해 처분에서 대기발령 사유로 삼은 사유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이와는 전혀 별개의 사유까지 포함하여 위 대기발령 처분의 당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0. 6. 23. 선고 98다54960 판결). 그런데 징계처분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권이 인정되는 인사권의 행사에 불과한 대기발령의 사유를 이와 같이 발령시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봐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이와 같은 판례의 입장에 따르면, 대기발령 기간 중에 새롭게 대기발령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반드시 추가적인 대기발령 처분을 하여야만 하고, 기존의 대기발령에 새로운 사유를 추가하여 유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결론은 징계처분과 대기발령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에 도출된 오해라고 생각된다.

대기발령의 기간 또한 대기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용자가 대기발령 근거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대기발령 사유의 발생에 따라 근로자에게 대기발령을 한 것이 정당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기간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대기발령을 받은 근로자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 근로의 제공을 할 수 없다거나, 근로제공을 함이 매우 부적당한 경우가 아닌데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을 정도로 부당하게 장기간 동안 대기발령 조치를 유지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무효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07. 2. 23. 선고 2005다3991 판결, 대법원 2013. 5. 9. 선고 2012다64833 판결).

대기발령 중의 사용자에게 임금지급의무가 있을까? 있다면 얼마를 지급하여야 정당한 대기발령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일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사용자의 경영상황에 따른 대기발령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46조 제1항에서 정한 휴업을 실시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용자는 그 근로자들에게 휴업수당 즉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대법원 2013. 10. 11. 선고 2012다12870 판결). 대기발령은 근로자가 현재의 직위 또는 직무를 장래에 계속 담당하게 되면 업무상 장애 등이 예상되는 경우에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당해 근로자에게 직위를 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잠정적인 조치로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서 정한 ‘휴직’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는 사용자가 자신의 귀책사유에 해당하는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개별 근로자들에 대하여 대기발령을 한 것으로서 근로기준법 제46조 제1항에서 정한 휴업을 실시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례에 따르면,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하였다고 하여 대기발령이 무조건 정당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발령의 사유, 기간,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하였다고 하여도 추가근로수당의 미지급, 직책급의 미지급 등의 불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당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비록 사용자의 인사권행사에 따라 근로제공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추가근로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대기발령 기간 중에 추가근로수당을 지급하여야 하는 셈인데,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운 결론이지만 실무자로서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고정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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