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특수효과(VFX), 언리얼엔진 등 ‘퓨처테크’ 덕분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버추얼 프로덕션(가상 제작)’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지난 14일 방문한 ‘할리우드 최고(最古·110년) 스튜디오’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파라마운트픽처스에서도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감지됐다.
CJ 파주 스튜디오에서 본 것과 비슷한 LED 화면이 등장한 것.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버추얼 프로덕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6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서 2030년 67억9000만달러(약 9조8000억원)로 네 배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크로마키 기법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이다. 크로마키는 녹색 천 앞에서 장면을 촬영한 뒤 나중에 배경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빛의 방향을 정확하게 구현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없는 천 앞에서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기 일쑤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다르다. 실제와 똑같은 LED 화면을 배경으로 찍는 만큼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다.
제작 기간과 비용도 30~40% 줄일 수 있다. 배경만 바꾸면 같은 스튜디오 안에서 여러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별다른 장비를 설치하지 않고 아예 다른 작품을 찍을 수도 있다. 디즈니의 제작 스튜디오 ‘ILM’, 소니픽처스의 ‘소니 이노베이션 스튜디오스’ 등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도 최근 국내에 버추얼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버추얼 프로덕션 방식은 이미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올해 개봉한 영화 ‘더 배트맨’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버추얼 프로덕션을 통해 제작됐다.
파라마운트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도 여기에 대비하고 있다. 박이범 파라마운트 아시아 사업·스트리밍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라마운트는 미래 콘텐츠를 준비하는 ‘퓨처리스트’ 팀을 꾸리고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등 신기술과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시청자가 게임처럼 1인칭 시점에서 콘텐츠와 소통하며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르면 2025년부터 메타버스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에선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세계적인 힙합가수 트래비스 스콧은 2020년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라이브 공연을 열고 신곡을 발표했다. 3D 렌더링된 스콧의 아바타가 하늘에서 등장하는 등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연출을 선보였다. 당시 메타버스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게임에 접속한 사람은 1230만 명에 달했다.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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