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준중형 트럭 시장은 현대자동차 마이티의 영토였다. 오랜 기간 99%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다. 이스즈의 엘프를 제외하면 경쟁 모델이 전무했다. 이런 시장에 2020년 12월 출시된 타타대우상용차의 트럭 더쎈이 뛰어들었다. 더쎈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최근 점유율이 20%를 넘어서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초 13년 만에 새로 출시한 중형트럭 구쎈, 대형트럭 맥쎈의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타타대우는 올해 1만 대 이상의 사상 최대 판매량, 1조원 이상의 역대 최고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타타대우를 오랜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한 해결사는 2019년 취임한 김방신 사장이다. 그는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당시 코로나19 등 대외 환경보다 더 큰 위기는 직원들의 ‘패배의식’이었다”며 “1200여 명의 직원에게 ‘성공 방정식’을 익히게 하기 위해 화장실부터 개발 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살아날 수 없다고 여겼다”며 “전 직원과 출시일까지 신차를 반드시 개발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각서를 써서 책상 앞에 붙이기까지 했다”고 했다. 준중형 트럭은 타타대우의 이전 사장들도 연달아 도전했지만 실패한 차급이었다.
적자에 빠졌던 타타대우는 상품성을 높이면서도 투자비를 줄이고 출시 일정을 앞당기는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는 출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역발상을 택했다. 이탈리아 엔진, 독일 변속기 등 고품질 부품을 사 와 더쎈에 적합하게 튜닝했다. 엔진과 변속기는 자동차 개발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터라, 구매비를 높이는 대신 개발비를 아끼고 출시일을 지켰다. 또 공장 설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기존 라인을 개선했다. 그는 “원가 절감을 위해 협력사들도 함께해줬다”고 했다.
김 사장은 트럭 운전사들이 느끼는 타타대우의 단점을 조사해 이 중 150가지를 신차에 반영했다. 가령 운전사들이 비에 젖은 장화를 놓을 수 있는 바닥 공간을 새로 마련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는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으로서 기민하게 시장 반응을 살폈고, 경쟁 모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밤새 연구했다”고 했다.
더쎈을 개발했던 방식대로 그는 이번에도 출시일부터 정하고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개선점을 취합했다. 평균 6시간 이상 트럭에 앉아 있는 운전사를 위해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걸 필수로 여겼다. 8단 자동 변속기, 에어브레이크 등으로 승차감을 개선한 것도 이런 과정 덕분이다.
중형과 대형 트럭 시장은 준중형 트럭과 달리 글로벌 수입차들이 장악한 시장인 터라, 김 사장은 다른 방향으로 승부했다. 그는 “그들이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룰로 경기한다면, 우리는 족구를 하자는 생각에 ‘틈새시장’인 덤프와 믹서를 중심으로 개발했다”고 했다. 같은 운동장에선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개발한 맥쎈과 구쎈 역시 소비자의 호평을 받고 있다.
더쎈은 1회 충전 시 300㎞ 안팎 주행을 기준으로 차량을 개발 중이다.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을 다니는 준중형 트럭은 이 정도 주행거리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그는 “브랜드, 로고, 엠블럼에 변화를 주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며 “타타대우의 새 역사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형규/김일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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