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화물차 보조금 새는 이유

입력 2022-10-25 16:03   수정 2022-10-25 16:04


보조금 수천만원을 받아 전기 화물차를 구입한 뒤 웃돈을 붙여 중고차로 되파는 ‘보조금 재테크’가 논란이 일고 있다. 출고가 4200만원의 전기 1t 트럭을 거의 절반 가격에 산 뒤 500만~1000만원의 프리미엄을 붙이는 식이다. 전기차를 구입한 지역 내에서 중고차로 팔면 보조금 반환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한 ‘도덕적 해이’다.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는 신차 출고가보다 높은 가격의 전기 1t 트럭 매물이 즐비하다. 긴 충전 시간과 짧은 주행거리에 따른 실망 매물도 있지만, 출고되자마자 중고로 나온 매물도 수두룩하다. 보조금 재테크를 노린 티가 역력한 물건이다. 국민 혈세가 개인의 ‘차테크’ 수단으로 활용되니 황당할 따름이다.

보조금 재테크 부작용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대당 2000만원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전기 화물차의 대기오염물질 저감 효과가 의외로 미미하다는 것이다. 기존 경유차를 폐차하지 않은 채 신규 전기 화물차만 늘고 있어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 화물차를 사면서 기존에 보유한 차량을 폐차하는 비율은 2020년 5.8%에서 2021년 8월 말 2.7%로 오히려 감소했다. 2021년 1만5891대의 1t 전기 트럭에 보조금이 지급됐지만, 폐차된 경유차는 431대뿐이다. 노후 경유차를 전기차로 대체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정책 목표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거액의 보조금만 줄줄 샜다는 얘기다.

전기 화물차의 ‘환경 편익’이 기대 수준보다 낮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친환경차 지원 정책의 합리적 개편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선 전기 1t 트럭을 16.8년(생애주기)간 운행했을 때, 동급 경유 화물차를 몰았을 때보다 환경 피해 비용이 220만~530만원 낮은 데 그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대 효과를 감안하면 대당 2000만원의 보조금이 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형 전기 화물차 보급에 쓴 국민 혈세는 지금까지 2조원이 넘는다. 정부는 내년 지원 물량을 더 늘린다. 신차 판매의 40%에 달하는 5만5000대를 전기차로 보급하겠다며 국비 7700억원, 지방 4500억원 등 1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국가 재정 건전성에도 부담이 된다.

국내 1t 화물차 시장은 연 15만 대 규모다. 이 가운데 전기차 비중은 지난해 17%, 올해 7월까지 22%로 높아졌다. 전기차 비중이 20%를 넘어섰다면, 보조금을 통해 초기 시장을 조성하는 단계는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지금 단계에선 보급 대수 달성에 급급하기보다 정책 실효성을 제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우선적인 목표는 경유차 폐차율을 높이는 것이다. 경유차를 폐차할 때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폐차 여부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도록 설계해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출고된 전기차가 제대로 운행될 수 있도록 충전 인프라 지원도 늘려야 한다. 전기차 충전기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급속 충전기는 부족하다. 고장이 난 채로 방치된 충전기를 고쳐 달라는 민원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대수, 충전소 설치 대수 등 실적에만 초점을 두는 공급자 중심의 보조금 정책에서 바뀌어야 할 때다. 수요자 만족을 먼저 고려할 때 전기차 시장이 더 빨리 활성화될 것이다.

권용주 퓨처모빌리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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