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선(先)보상 후(後)논의’하라. 약관 (배·보상) 범위를 넘겨도 된다. 좀스럽게 하지 말고 화끈하게 하라.”
지난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카카오 먹통 사태’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SK C&C, 카카오, 네이버 등에 쏟아낸 요구사항이다. 기업들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서비스 장애로 인한 피해를 서둘러 보상하라는 게 요지다. 아직 누가 어떤 피해를 얼마나 받았는지 조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일단 돈부터 주란 얘기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재난 대책을 강화하라며 기업의 준비 소홀과 소극적 투자를 지적한 의원은 소수에 그쳤다.
이날 의원들 호통의 대부분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기업의 현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라 창업자나 그룹 총수를 향했다. 지난 3월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대표적이다. “경영진과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김 센터장 답변엔 “지금 확실히 약속하라”는 의원들의 압박이 이어졌다. 창립자 ‘한마디’면 보상 집행을 결정할 수 있다는 모양새였다. 그동안 이사회를 중심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해 온 기업들은 난색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날 국감만 보면 ‘제왕적 오너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건 기업인이 아니라 의원들이었다.
실제 기업들이 무턱대고 보상부터 나설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그래서도 안 된다. 보상은 피해자와 직원, 주주는 물론 산업 생태계 전반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서비스 장애 보상액은 기업 실적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직접 지급 방식일 땐 비용으로, 요금 감면 등의 경우엔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기업들의 보상 범위에 따라서는 경영상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카카오 등이 적용받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서비스 장애에 대한 손해배상은 무상 서비스인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이런 와중에 명확한 기준도 없이 국감장에서 대규모 보상을 약속했다가는 경영진이 배임 혐의를 적용받을 수 있다.
보상 요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이번 사태는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업들의 책임이 크다. 소상공인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그렇다고 해서 보상을 비롯한 기업의 의사결정이 원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당장, 많은 돈을 풀라”는 것은 기업 팔을 비틀어 여론을 챙기려는 포퓰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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