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은 한쪽 발을 절었지만 글재주가 탁월했다. 생각이나 표현법도 남달랐다. 케임브리지대 3학년 때, 신학 시험에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이 상징하는 종교적, 영적 의미를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오래 생각하다가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는 명답을 써서 최고점을 받았다.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문학적 감수성에 수학적 재능까지 겸비했다. 찰스 배비지가 설계한 초기 컴퓨터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연구하던 그녀는 가설과 계산만으로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완성해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그로부터 한 세기 이상 지난 1979년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ADA프로그래밍 언어가 탄생했다.
그러고 보니 고전이야말로 인문정신과 과학기술의 접점에서 꽃을 피우는 ‘창의의 뿌리’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길잡이가 곧 고전이다. 인류 문명의 빛나는 원석들을 한군데 모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번뜩이게 하는 부싯돌 역할까지 한다. 장편 역사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을 쓴 에드워드 리튼이 “과학에서는 최신의 연구서를 읽고, 문학에서는 가장 오래된 책을 읽으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전 다시 읽기에 나선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자. 미국 저술가 데이비드 덴비는 대학 입학 30년 만인 1991년 모교인 컬럼비아대 후배들 틈에 끼여 ‘인문학’과 ‘현대문명’ 두 강좌를 청강하며 고전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나이 50을 앞두고 고전의 황홀경에 빠진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새로 읽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대기에 충만한 야만적 활력, 장대한 전함, 바람과 불길, 맹렬한 전투, 겁에 질린 말들로 가득 찬 평원. 땅바닥에 엎어져 죽은 전사들, 산산조각 난 고향과 가족, 초원, 평화의 제의에 대한 염원, 이 모든 것을 거친 뒤 마침내 화해의 순간이 도래한다.”
그는 전쟁터의 참상을 끔찍하게 묘사한 야만성과 여성을 물건처럼 다루며 자존심만 앞세우는 그리스인의 모습에 경악하다가 점차 그것이 문화적 이질성에서 비롯된 시각차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대 윤리의 현주소와 우리 자신을 거울에 되비춰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읽으면서는 억센 성격의 사업가였던 어머니가 자식들의 사랑에 집착한 이유를 뒤늦게 알고 뼈저린 회한에 잠기기도 한다.
동양 고전도 마찬가지다. 한비자는 “사람이 일하거나 베풀 때 상대에게 이익을 준다는 마음으로 하면 아무리 소원한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고 상대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마음으로 하면 부자 관계라도 원한을 맺게 된다”는 삶의 이치를 일깨워준다.
손자는 “무릇 전쟁은 명분이 가장 먼저이고 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은 그다음”이라고 했다. 두 차례의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끈 토미 프랭크스 미군 대장을 비롯해 많은 지휘관과 글로벌 경영자들이 손자의 고전 병법에서 리더십의 비결을 배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해주는 책이다. 매일 15분이나 30분씩 시간을 내 고전을 읽고 사색하면 연말쯤 자기도 모르는 변화를 느낄지 모른다. 일본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펼쳤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는 구절을 만나면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질 것이다.
고전은 천천히 읽으면서 오래 음미하는 게 좋다. 코끼리 심장 박동과 혈액 순환 사이클이 생쥐보다 18배나 길듯이, 생각의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과 가치관이 달라진다. 천천히 읽고 그 감동을 글로 남기면 더욱 좋다. 그게 바로 우리 삶의 자서전이다. 미래 세대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고전으로 읽힐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뇌파 반응이 활발해진다. 동물에게 새로운 자극이나 상황을 제공하면 각성 반응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개의 조건반사 연구로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도 “새 아이디어를 찾으려면 오래된 책을 읽으라”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서가에 꽂힌 고전부터 찾아 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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