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합스부르크 왕가

입력 2022-10-25 17:55   수정 2022-10-26 00:11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테러에 희생됐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탓에 제국은 해체됐고, 중부 유럽의 작은 내륙국가 오스트리아만 남았다.

하지만 1500년대 초부터 1차대전 직전까지 제국이 떨친 위세는 대단했다. 현재의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독일, 체코, 헝가리,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베네룩스 3국 등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절반을 지배했다. 그런 제국을 600년 가까이 이끈 것이 바로 1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이다. 알프스 시골 귀족이던 합스부르크가(家)가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은 1273년 루돌프 백작이 독일 왕(루돌프 1세)으로 즉위하면서다. 이후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세습했고 합스부르크 제국을 출범시킨 페르디난트 1세, 여성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마리 앙투아네트 등 수많은 인물을 낳았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단한 이유는 또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 후원과 수집이다. 제국의 힘이 유럽 전역에 미친 1500년대부터 수집을 시작해 미술품은 물론 주화와 훈장, 광물 표본, 해양생물, 시계, 악기, 전투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목록을 자랑한다. 16세기의 루돌프 2세는 궁정화가를 기용하는 한편 유명한 장인들에게 공방을 지어주고 후원했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엄청난 양의 갑옷을 모았고, 필리페 4세는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를 적극 후원했다. 페르디난트 2세는 네덜란드 지역에서만 1400여 점의 회화를 수집했다.

수집품들을 황실에 가둬놓지 않고 일반에 공개한 것도 이 가문의 미덕이다. 계몽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1776년 가문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했고,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수집품 전시를 위해 빈미술사박물관을 설립했다. 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 96점이 서울에 펼쳐졌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2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을 통해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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