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평형(전용 84㎡) 기준 '20억·10억 클럽'에 입성하면서 축포를 쐈던 수도권 아파트 단지들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연이어 '배지'를 반납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거래 절벽'이 지속되는 가운데 잇따른 금리 인상 등으로 시장 환경이 악화하자 급매물들만 거래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거래가 활성화되면 더 빠르게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84㎡는 지난 8월 18억5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지난 2월 25억4000만원에 거래됐던 면적대다. 신고가보다 6억9000만원 내렸다. 2020년 처음으로 '20억 클럽'에 가입한 이후 약 2년 만에 20억원 선을 내줬다.
마포구 현석동 '래미안웰스트림' 전용 84㎡는 지난 5월 19억8000만원에 매매됐다. 이 면적대는 작년 9월 23억원에 거래되면서 20억원을 넘어섰는데 13개월 만에 매맷값이 20억원 밑으로 내려갔다.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 전용 84㎡도 지난 7월 16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 면적대는 지난해 10월 20억원에 거래됐던 곳이다. 올해 2월 거래된 18억9000만원보다는 2억9000만원, 역대 최고가보다는 4억원 하락했다.
마포구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많은 집주인이 '그 가격엔 못 팔지'라는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며 "최근 수억원씩 거래된 매물이 나오다 보니 실수요자들도 급매 가격을 시세라고 생각하고 그런 가격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집값 급등에 힘입어 '10억 클럽'에 속속 가입했던 경기·인천 등에서도 매맷값 하락이 가파르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힐스테이트다산' 전용 84㎡는 지난 8월 9억9500만원에 손바뀜했다. 이 면적대는 지난해 2월 10억3300만원에 거래되면서 10억원선을 뚫었다. 이후 같은 해 12월엔 11억2000만원까지 팔리기도 했다.
가격이 반토막 난 곳까지 나왔다. 시흥시 배곧동 '시흥배곧C2호반써밋플레이스' 전용 84㎡는 이달 들어 5억7000만원에 팔렸다. 직전 거래인 7억8000만원보다는 2억1000만원 하락했고, 지난해 9월 거래된 10억원보다는 4억3000만원 내렸다.
인천시 송도구 송도동' 송도더샵마스터뷰21블록' 전용 84㎡도 이달 들어 6억8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해 8월 처음으로 10억원에 거래되면서 10억원을 돌파한 이후 9월엔 11억900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5억1000만원이 하락했다.
송도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서울에서도 급매가 쏟아지는데 경기, 인천은 더 버티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작년과 재작년 등 갈아타기 수요가 꽤 있었는데 일시적 1가구 2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급매들로 가격이 많이 내려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급매물로 시세가 하방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거래가 활성화돼 활발해지면 가격은 더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KB부동산이 발표한 월간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7억8844만원으로 올해 2월 처음으로 평균 매맷값이 8억원을 돌파한 이후 9개월 만에 다시 내려왔다. 중위 매맷값도 크게 내렸다. 이달 수도권 아파트 중위 매맷값은 7억3768만원으로 전월(7억5244만원)보다 1.96% 내렸다.
매매가격 전망지수도 악화하고 있다. 10월 매매전망지수는 61로 전월 64.4에서 3.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11월(95.9) 처음으로 100을 밑돈 이후 오르내리던 지수는 지난 4월부터 7개월 연속 떨어지고 있다.
실수요자 심리도 위축됐다. 수도권 매수우위지수는 16.5로 전달(19.5)보다 3포인트 내렸다. 매수우위지수는 매수세와 매도세의 활발함 정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0~200의 값을 가진다. 값이 작을수록 사려는 수요자보다 팔려는 집주인이 많단 의미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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