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전기차만 개발한 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내연기관만 목매던 완성차업체들이 뒤늦게 무슨 수로 따라오나?”
테슬라 열성 팬들이 테슬라의 기술력을 강조할 때 흔히 펴는 논리 중 하나입니다. 전기차는 그러나 근래 들어 나온 기술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1888년 독일의 발명가 안드레아스 플로켄이 만든 ‘플로켄 일렉트로바겐’을 최초의 전기차로 보고 있습니다. 1886년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1900년대 초엔 미국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38%가 전기차였습니다(찰스 모리스《테슬라 모터스》). 1913년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가솔린 엔진 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전기차는 도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물론 이 전기차들은 내연기관 차량의 플랫폼을 활용한 개조형 모델이었습니다. 엔진 등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전동모터와 배터리 시스템을 끼워 넣었습니다. 테슬라 같은 순수 전기차 플랫폼 차량에 비해 배터리 효율과 주행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 정의선 당시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차의 전기차 전략은 일대 변화를 겪게 됩니다. 현대차는 기획, R&D, 상품 전략까지 총괄하는 전기차 전담 조직을 신설합니다. 2019년엔 연구개발 조직도 대폭 강화했습니다(박태준《충전 중인 대한민국 전기차》). 오너가 주축이 되어 그룹 역량을 전기차에 쏟아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 아이오닉 5와 올해 세단 아이오닉 6가 출시됩니다.
제원과 가격으로 본 아이오닉 5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제 출고를 하려면 계약 후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각국에서 자동차 상을 받는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차를 타보면 어떨까요. 현대차의 이 야심 찬 전기차는 테슬라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 <테슬람이 간다>도 아이오닉 5 시승기입니다. 지난 9월 25일과 10월 7일 이틀에 걸쳐 경기도 일산의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진행했습니다. 시승은 일반 고객과 똑같이 현대차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습니다. 첫 시승은 가이드와 함께 30분 코스, 두 번째 시승은 운전자 단독으로 3시간 코스를 체험했습니다.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디지털 사이드미러입니다. 거울 대신 카메라가 달렸고 운전석과 조수석 양 끝에 OLED 모니터가 배치됐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운전하면서 금세 적응됩니다. 화면 해상도도 높습니다. 그러나 이 옵션을 넣으려면 285만원을 추가해야 합니다. 거울 외에 어떤 용도가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운전대를 잡아봅니다. 두툼한 촉감이 마음에 듭니다. 시트와 내장재 마감이 차분하면서 고급스럽습니다. 12.3인치 LCD 패널은 시인성이 좋습니다. 군데군데 들어간 플라스틱 소재도 소위 ‘싼티’가 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제네시스 G70의 내장보다 마음에 듭니다. 이 부분에서 테슬라 모델Y는 한 수 아래입니다.
차량 천장 위 탁 트인 비전 루프도 눈에 들어옵니다. 뒷좌석 아이들이 좋아할 옵션입니다. 그러나 테슬라처럼 선루프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굳이 이걸 따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현대차의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흐릿합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등 독일 프리미엄 차에 아직 못 미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오닉 5의 기어는 칼럼 시프트입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차량이 출발합니다. 전기차답게 주행 질감은 부드러우면서 정숙합니다. 내연기관차와 크게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승차감은 편안합니다. 도로의 둔덕도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핸들링 역시 테슬라 차량보다 다소 가볍습니다. 이 차가 지향하는 바가 ‘아빠 차’ ‘패밀리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반면 모델Y의 승차감은 다소 딱딱합니다. 특히 불규칙한 도로에서 노면을 심하게 탑니다. 이는 일부 모델Y 차주들도 지적하는 사항입니다.
내연기관차 운전자들이 초기에 가장 낯설어하는 전기차 회생제동(가속페달을 발에서 떼면 급제동)은 5단계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오닉 5 시승차의 설정은 기자에게 매우 편했습니다. 모델Y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테슬라 차주들은 “회생제동은 금세 적응되고 오히려 편하다”고 말합니다.
아이오닉 5와 비슷한 제로백을 가진 차로 포르쉐 718 박스터(4.9초), 벤츠 e클래스 e450(5초), BMW 640i(5.2초) 등이 있습니다. 모델Y 롱레인지도 5초입니다. 모두 가격이 1억원을 넘나드는 고가 차량입니다. 수입차 ‘입문 모델’인 BMW 3시리즈(320i?7.3초)나 벤츠 C클래스(C200?7.1초)가 도로에서 아이오닉 5에 덤볐다간 뒤꽁무니만 보는 망신을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다만 차량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이오닉 5보다 더 큰 SUV인 벤츠 GLC가 1905㎏, BMW X3가 1895㎏으로 100㎏가량 가볍습니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경량화가 쉽지 않습니다. 차세대 전기차 하드웨어 경쟁은 이 부분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오닉 5에 탑재된 반자율주행 기술은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크루즈컨트롤(NSCC) △고속도로 주행 보조 △차로 유지 보조 △전·후방 충돌 방지 보조 기능 등입니다. 기능 설명 만으론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SCC 버튼을 누르고 운전대에서 손을 떼 봅니다. 어떤 조건이 필요한건지 주행 보조 모드로 들어가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간신히 인식해도 자꾸 풀립니다. 이 때문에 손에서 핸들을 떼는 게 불안했습니다. 차량이 별로 없는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간신히 한 번 성공합니다. 깜빡이만 켜고 움직이지 않아서 뒤차에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 수준으론 테슬라와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글로벌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테슬라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와 자율주행 기술 격차를 1년 수준으로 좁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체험한 바로는 그 1년엔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2013년 첫 계획을 발표한 이후 자율주행 기술에만 근 10년을 매진한 기업입니다. 자율주행 칩과 소프트웨어 및 AI 슈퍼컴퓨터(도조·DOJO)를 모두 자체 개발했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전기차를 내놓지 못한 글로벌 경쟁사를 생각하면 현대차의 야심과 속도가 기대됩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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