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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오월동주. 경쟁자와 손을 잡을 때 자주 쓰는 말이죠.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업체로 잘 알려진 시스코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분야는 화상회의로 대표되는 협업툴 시장입니다. 재택근무와 사무실근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워크’가 확산되면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협업툴 시장 생태계를 키우는 데 올인 한다는 전략입니다.
저는 지금 산호세 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시스코 본사 앞에 나와있습니다. 협업툴 시장 확대에 올인한 시스코가 ‘하이브리드워크 체험센터’를 전세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는데요. 시스코가 구상하는 하이브리드워크의 모습과 향후 전략을 저와 함께 살펴보시죠.
시스코가 구상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워크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직 공식 개장하지 않은 하이브리드워크 체험 센터를 취재진에게 공개했는데요 제가 그 자리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AI 머신러닝이 화상회의 화면을 최적으로 확대한 뒤 구분해주는 피플 포커스 기능이었습니다. 넓은 회의실에 앉아있는 3명의 팀원 얼굴은 처음에는 작았지만 피플 포커스 기능을 사용하니 이렇게 확대돼 보다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됐죠.
또 소음 제거 기능은 장난감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화상회의에서 완전히 지워버립니다. 화이트보드 기능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화상회의를 하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다보면 각자의 생각을 한 곳에 적을 수 있는 화이트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이 웹엑스의 화이트보드 앱을 사용하면 회의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고 그 내용이 실시간으로 공유됩니다.
또 시스코 웹엑스는 원격진료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장비도 갖추고 있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시스코의 글로벌 협업툴 생태계 확대 전략에 대해서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시스코는 25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개막한 협업솔루션 행사 '웹엑스원 2022'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의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앞서 지난 21일 시스코 본사에서 만난 지투 파텔 시스코 보안 및 협업부문 총괄매니저 부회장은 "시스코는 하이브리드 워크에 올인했다"며 "고객들의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네트워크, 협업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보안 등의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생태계 파트너십을 구축해왔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스코는 자사의 협업툴 장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화상회의 플랫폼인 '팀즈'도 기본 운영 소프트웨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한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증을 받은 팀즈 프로그램 파트너는 시스코가 처음입니다.
화상회의를 지원하는 시스코 장비를 쓰는 사용자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소프트웨어인 웹엑스 뿐만 아니라 내년 초부터 팀즈도 기본 운영체제로 탑재됩니다. 시스코의 협업 장비는 회의실 전체에 설치되는 '시스코 룸' 시리즈를 비롯해 책상에 올려놓고 쓰는 '시스코 데스크 프로' 등이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든지 시스코 협업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게 돼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애플과 협업도 확대합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이용자들이 시스코의 화상회의 앱인 '웹엑스 미팅'을 쓸 때 모바일 기기의 전면과 후면 카메라로 찍은 실시간 영상을 통해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애플 모바일기기의 고화질 동영상 촬영 기능과 웹엑스의 화상회의 기능을 결합해 협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겁니다. 앞서 지난해 시스코는 애플의 카플레이와 웹엑스 소프트웨어를 연동해 운전을 하면서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었습니다.
시스코가 이렇게 다른 테크업체와 협업에 집중하는 것은 단독으로는 협업툴 생태계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파텔 부회장은 "시스코의 올해 고객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5%가 화상회의 플랫폼을 두 개 이상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협업 장비를 구축하려는 고객은 복수의 플랫폼이 서로 매끄럽게 작동되는 장비를 더 선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수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고객의 특성을 반영해 개방적인 생태계를 구축, 협업툴 시장의 파이를 더 키워나가겠다는 전략입니다.
글로벌 협업툴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협업툴 시장은 2021년 172억달러(약 24조원)에서 2028년 407억달러(약 58조원)로 연평균 13.2% 성장할 전망입니다.
시스코는 협업툴 분야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세계 1위 사업자입니다. 시장조사기관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분야는 지난해 3분기 기준 유료사용자 기준 100명 이상 글로벌 대기업 및 중견기업 가운데 41%가 시스코의 웹엑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34%, 줌이 16%의 점유율로 뒤를 이었습니다. 영상협업 장비 시장에서는 시스코가 시장점유율 30.1%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로지텍(19.1%), 폴리(16.9%), 화웨이(4.9%), 마이크로소프트(4.3%) 순입니다.
1위 사업자인 시스코가 협업을 통해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면서 자신도 시장의 점유율을 더 높여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시스코의 협업부문은 2022 회계연도(2021년 8월~2022년 7월) 회사의 전체 매출 516억달러(약 73조8700억원) 가운데 9%인 약 46억달러에 이른다. 네트워크장비 부문이 전체 매출의 4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서비스 부문(26%), 인터넷 기술(10%)에 이어 전체 6개 사업부 가운데 네 번째입니다.
시스코는 성장에 정체를 겪고 있습니다. 2022 회계연도 매출 성장률은 3.4%에 그쳤고, 앞서 전년도에는 1% 성장에 머물렀다. 회사는 지난 8월 실적발표 당시 2023 회계연도에는 매출이 올해보다 2.3% 늘어난 528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란 자체 전망치를 내놨습니다. 성장률이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성장하는 협업툴 시장을 집중공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주가는 지난 13일에 38.6달러로 저점을 찍고 다시 반등하는 모양새입니다. 24일 기준 43.54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월가는 시스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18개 금융투자사가 리포트를 내놓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6곳이 매수, 11곳이 중립, 1곳이 매도 의견을 냈습니다. 실적 발표가 있었던 두 달 전 나왔던 리포트들이 대부분입니다. 목표주가는 평균 52.73달러입니다. 21% 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하이브리드 워크 올인 전략이 과연 시스코의 성장 속도를 끌어올릴 수있을까요? 경기침체에 고객사들이 투자를 줄이는 빙하기에 협업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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