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 산업화는 왜 서구에서 시작됐을까. 이 질문에 많은 학자가 달라붙었다. 멀게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가까이는 제러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같은 책들이 있다. 개신교 윤리와 금욕주의, 지리적 이점이 서구의 번영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여기 또 하나의 책이 있다. 조지프 헨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가 쓴 <위어드>다. 헨릭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학 졸업 후 제너럴일렉트릭(GE)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다시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인류학 교수를 하다가 다른 대학에 가서는 심리학과와 경제학과 두 곳에서 교수를 맡았다. 그 독특한 여정이 이 책에 집약돼 있다. “인류학, 역사학, 심리학, 경제학을 통합해 현대 서양 문화가 다른 모든 문화와 어떻게 다른지 명쾌하게 설명해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책은 위어드(WEIRD)만의 독특한 심리를 소개하며 이야기의 문을 연다. 위어드란 서구의,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화된, 부유하고, 민주적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비순응적이고, 인내심이 있고, 타인을 신뢰하며, 분석적이고, 의도에 집착한다. 저자는 세계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이런 특성이 서구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본다.
서양과 동양의 다른 심리 특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책은 더 파고든다. 그리고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을 편다. 가톨릭교회가 친족 결혼을 금지한 덕분에 이런 심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서기 587년 무렵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잉글랜드 앵글로색슨족의 켄트왕국에 보낸 사절단을 통해 기독교인의 올바른 결혼에 관해 지침을 내렸다. 4촌 이내 친척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남자는 계모 혹은 죽은 형제의 부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정책은 몇백 년에 걸쳐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그 결과는 혈연 기반 부족주의의 해체였다. 강한 혈연 사회에서 해방된 서구인은 점점 개인주의적으로 변했고, 타인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데이터를 총동원한다. 지금도 친족 간 결혼 비율이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가 △자발적 헌혈 비율 △외교관 1인당 미납 주차위반 과태료 △평균 기부액 △분석적 사고 응답률 등에서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저자는 “사촌 간 결혼 비율이 낮을수록 낯선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비율이 높다”며 “또 친족 관계가 강한 사회에선 내집단에 대한 충성이 우선시돼 뇌물 수수를 부채질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기독교로 인해 유럽에서 정착된 일부일처제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결혼해 아버지가 되면 미혼 또는 자식이 없을 때와 비교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혼하면 수치가 다시 높아진다고 한다. 즉, 일부일처제는 사회 차원에서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는 수단이 된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공격성을 낮추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설명이다.
유럽의 문해율이 높았던 이유도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뒤 부패한 가톨릭 대신 개신교가 유럽에 퍼져나갔다. 개신교는 남자든 여자든 성경을 혼자 힘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오직 성경’ 정신을 강조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선 글 읽는 법을 배워야 했다. 유럽 외 지역에서 같은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900년대 아프리카에서 개신교가 진출한 지역은 가톨릭 지역보다 문해율이 평균 16%포인트 높았다.
책은 과거를 말하지만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게도 한다. 문화, 제도, 심리가 상호 작용하며 변해간다면, 지금 그 변화를 이끄는 동인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고 논쟁적일 수 있지만, 분석 틀은 잘 활용해봄 직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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