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근로시간제가 해외 건설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해 수십조에 달하는 글로벌 수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해외 건설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연장근로 확대를 즉시 추진한다.
고용노동부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지난 27일 발표한 '해외 건설업종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외 파견 건설근로자 대상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 확대' 방침에 따라, 해외건설업의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180일까지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 업무처리 지침'을 3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최근 수주 경쟁력 저하를 체감한 해외 건설사들의 위기감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건설협회가 지난 9월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애로사항'에 대해 26개 해외 진출 건설사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 △외국 발주처의 수시 업무 지시에 대응 불가(18개 사) △현지 기후 및 환경(우기)에 따른 특정 기간 근무 차질(13개 사) △제3국 및 현지 인력 관리나 협업 어려움(11개 사) 순으로 응답 기업이 많았다.
고용부도 "중동의 모래폭풍, 동남아의 우기, 몽골 등에서는 1년의 절반 가까이 땅이 얼어 있는 등 현지 여건에 따라 일정 기간 집중적인 근로가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건설인력은 수급에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에서 온 관리 인력 수급이 문제다.
코로나19 이후 직원들이 해외 현장을 기피하는 데다, 전문성 있는 인력을 짧은 기간 안에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건설사들도 해외 작업에서는 공기에 차질을 빚거나 가격 경쟁력이 악화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건설협회가 제공한 실제 사례에 따르면, 중동 정유공장 프로젝트에 조인트 벤처(JV)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A엔지니어링은 계약 연장을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파트너인 미국 회사 직원들은 '화이트칼라이그젬션'을 통해 주 60시간까지 근무를 하지만, 한국 직원들은 52시간에 묶이면서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한국에서는 주 52시간 시행에 대해 어느 정도 양해가 있어 약간의 공기 지연도 이해해 주지만, 해외 발주자들이나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파트너들에게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 건설 수주 상위 12개 사를 대상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응답 11개 사) 8개 사(72%)는 "탄력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제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탄력근로제의 경우 근로자에게 일별 근로시간을 2주 전에 통보하라는 규정을 두고 있어 국내서도 활용률 현저히 낮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해외 파견 건설근로자에 대해서는 제3호(돌발상황 수습) 및 제4호(업무량 폭증) 사유를 인정하고,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현재 90일에서 180일로 확대하는 방안을 즉시 시행할 계획이다.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변경 절차도 개선한다. 앞으로는 인가 이후 사용 필요성이 없어지거나 사정에 변경이 생긴 경우에는 기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애초에 2주(14일)로 인가받은 사업장이 원청의 주문 취소 등의 사유로 특별연장근로를 1주(7일)만 활용한 경우, 지금까지는 실사용 기간과 관계 없이 2주를 사용한 것으로 계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1주만 사용한 것으로 계산하게 돼 제도 활용이 유연해 진다.
인가기간을 변경하려면 최초 인가 기간 종료 후 1주일 이내에 특별연장근로 기간 및 해당 기간의 근로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해, 인가 받은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변경 신청을 하면 된다.
그밖에 인가 사유 별로 다르게 설정된 '사후 신청' 기한도 동일하게 바꿔 단순화 한다. 인가 사유와 관계 없이 특별연장근로 종료 후 '1주 이내' 사후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통일한다.
양정열 근로감독정책단장은 "현장의 애로를 반영해 특별연장근로 운영방식을 합리화하기로 했다"며 "기업과 근로자 의견 등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근로시간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기업의 상반기 해외 건설 수주액은 120억4000만달러로 1년 전 147억4700만원 대비 18.4%가 감소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3분기에 반짝 급등했다지만, 장기적으로 규제 개혁을 통한 경쟁력 확보 없이는 추후 수주 전쟁에서 중국이나 인도 등에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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