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력이 50년을 넘겼음에도 친숙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 특히 일반 소비자와의 접촉면이 적은 기업 간 거래(B2B) 기업이 그렇다. 소비자 입에 오르내릴 일이 드물고 브랜드 아이덴티티(BI)도 직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대적인 브랜딩 작업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오랜 기간 사용해 오던 사명이나 CI(Corporate Identity)를 바꿔 대중의 인식 속에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3일 창립 56주년을 맞는 효성그룹은 지난해 9월 ‘브랜드마케팅팀’을 신설하고 사명·CI 교체를 검토 중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효성의 브랜드가 시장에서 최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객이 믿고 인정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효성은 최근 내부적으로 ‘First Mover for Valuable Changes’란 홈페이지 문구를 설정하기도 했다. 친환경 제품·기술 개발을 통해 가치 있는 변화를 먼저 제시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브랜드마케팅팀은 이 문구를 기반으로 브랜드 작업을 정교화할 예정이다.
효성 관계자는 “‘효성’ 하면 (해당 슬로건이 표방하는) 이미지가 바로 떠오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며 “브랜딩 작업에 2~3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인 HD현대도 창사 50주년을 맞아 CI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달 13일 화살표 형상의 이미지가 담긴 새 CI 4개를 특허청에 출원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만든 기존의 디자인과 완전히 다른 모양의 CI가 후보군에 올라 있다. 업계에선 올해 지주사 대표로 선임된 정기선 사장이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차별화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몇 년 새 창립기념일 등을 계기로 사명이나 CI를 변경한 B2B 기업이 여럿 나왔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라그룹은 지난 8월 ‘HL그룹’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림산업 역시 지주회사 체제 출범에 맞춰 그룹 명칭을 ‘DL’로 변경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6일 LS니꼬동제련이 사명을 ‘LS MnM’으로 교체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꾀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영문 명칭을 선호하는 흐름이 생겼다.
삼양그룹은 같은 이름을 가진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 삼양식품과의 차별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룹은 2024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기념 엠블럼 제작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이런 움직임이 브랜드 강화와 사업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 사명에 ‘이노베이션’ ‘디스커버리’ 등의 단어를 쓴 SK그룹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문지훈 인터브랜드 대표는 “강남역 등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 대형 광고를 게시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를 계속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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