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란 용어는 원래 클래식 음악에서 먼저 쓰였다. 중세 시대 프랑스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일컬어 발라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춤춘다’는 뜻의 라틴어 ‘발라레(ballare)’에서 유래한 단어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퍼져가면서 점차 춤과의 연관성이 옅어지고 서정적인 가곡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 발라드는 줄거리가 있는 서사시, 이야기를 담은 담시(譚詩)를 가사로 하는 성악곡의 한 유형을 뜻했다.
노래 없이 악기로만 연주하는 기악곡 형태의 발라드가 발전한 건 19세기 쇼팽에 이르러서다. 폴란드 출신의 쇼팽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친구인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에 영감받아 발라드 1~4번을 작곡했다. 가사 없이 피아노 연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의 발라드는 이후 리스트, 브람스 등이 발라드를 작곡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발라드가 궁금한 클래식 초보라면 쇼팽 곡부터 들어보길 추천한다.
쇼팽 발라드 중 가장 유명한 건 1835년 완성한 발라드 1번이다. 중세 독일기사단과 리투아니아인의 전투를 그린 미츠키에비치의 서사시 ‘콘라트 발렌로트(Konrad Wallenrod)’에서 영감받았다. 이 곡은 어둠과 밝음이 교차한 뒤 어우러지면서 비극적인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식으로 전개된다. 시의 내용을 그대로 묘사했다기보다는 시가 가진 영웅적인 주제에서 영향을 받았다.
발라드 1번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독일 나치의 폴란드 침공 당시 실존 인물인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 스필만이 그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는데, 그때 연주한 곡이 바로 쇼팽 발라드 1번이다. 독일 장교는 그의 연주에 깊이 감동받아 스필만을 결국 살려준다. 햇빛이 가늘게 들어오는 먼지 가득한 폐건물에서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해당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