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 전문가들은 특정 장소에 인파가 집중됐을 때 나타나는 ‘군중심리’가 피해 규모를 키웠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핼러윈 축제 참가자들의 감정적 특성과 사고 발생 현장의 공간적 구조가 역대급 참사를 낳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당국이 이런 현상까지 감안해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이태원에 모인 군중의 성격이 사고 피해 규모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며 ‘긍정적 감정’이 퍼져 이성적인 위험 판단이 어려웠다는 얘기다. 사고 발생 당시 현장에 도착한 구급차나 경찰차, 심지어 부상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코스프레’나 ‘상황극’ 정도로 인식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뭉친 군중 속에서 개인은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경계심을 풀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경계심이 무너진 상황에서 대형 사고를 맞닥뜨려 대응이 더 느려졌다”고 말했다.
반대로 집회나 시위 군중은 심리적 특성이 달라 사고의 강도 역시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시위 현장에서는 군중 사이에 ‘부정적 감정’이 퍼져 있어 개인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며 “오히려 안전사고에 유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공간적 특성이 군중심리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곳은 폭 5m 안팎의 골목 양옆으로 건물이 올라서 있어 주변 시야가 좁아지고, 결국 앞쪽으로만 시야가 집중되는 특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터널 비전’ 현상이 빚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터널 비전이란 눈앞의 한 곳에 집중하면서 주위 현상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터널 비전 현상이 발생하면 위험 상황에 대한 인지가 늦어지고, 되레 비합리적 행동에도 동조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압사 사고 발생 당시 ‘밀치지 마’라는 외침이 나왔지만, 상당수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군중심리가 사고 규모에 영향을 끼쳤을지언정 사고를 ‘군중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차적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에 있다는 것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는 누가 뭐라 해도 100% 인재”라며 “핼러윈 데이에 이태원으로 인파가 몰려든 것이 처음도 아니고, 이전 데이터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질서 유지와 치안 관리에 책임이 있는 지자체와 정부가 책임을 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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