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은데 충전 문제 때문에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최모 씨(34)는 최근 전기차 구매를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없는 게 결정적 이유였다. 최 씨는 "이른바 '집밥'이나 '회삿밥'이 없으면 전기차 구매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며 "개인 충전기를 설치하려 해도 비용이나 절차가 만만치 않아 결국 전기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기차 30만대 시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국내 누적 전기차 등록 대수는 총 34만7395대에 달한다. 2019년 말 10만대가 채 안 됐지만(8만9918대) 3년새 전기차 수가 급증했다. 구매시 보조금 지급 등 전기차에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전기차에 대한 인식도 올라간 데다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를 내놓으면서다.
이처럼 전기차는 늘어나고 있지만 부족한 충전기는 여전히 숙제다. "집밥이나 회삿밥이 없으면 전기차를 타지 말라"는 조언은 집이나 회사에 충전기가 없으면 사지 말라는 것인데, 전기차 자체의 문제보다도 충전 인프라가 발목을 잡는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다.
하지만 10일 한경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현실은 다르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왔다. 충전기가 필요한 곳에 설치돼야 하는데,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다 보니 제대로 된 설치나 운영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자가 이달 초 서울의 집 주변 반경 1㎞ 내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 다섯 곳을 돌아봤더니 모두 제대로 작동하는 충전기가 설치된 충전소는 한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네 곳은 망가진 충전기가 있거나, 일반 내연기관차와 공용주차를 가능하게 해 전기차 충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한 주차장 관리인은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긴 하는데, 저속 충전기라 대부분 전기차를 충전하려면 인근 주민센터로 가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전기 상용 화물차를 타는 한 차주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주위 반경을 봐서 충전기가 비어있는 곳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그러나 충전기가 고장나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방전 때문에 서비스를 받은 적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전기차 충전 수요와 충전시설 공급의 미스매치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목된다. 지난해 발간된 경기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경기도 내 공용 급속 전기차 충전기 548기(환경부 시행)의 설치지점별 비중은 상업시설(21.2%), 휴게시설(12.8%), 공공시설(12.7%)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충전량 순은 휴게시설(20.4%), 업무시설(14.6%), 여객시설(6.9%)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리포트에서 "보조금 중심의 (충전기) 설치는 전기차 충전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고 풀이했다.
전기차가 급증하면서 보조금 없이도 충전소 운영 수익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시장 진출도 활발해지는 분위기. 롯데, SK, 카카오 등 주요 대기업이 전기차 충전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롯데그룹 산하 롯데정보통신은 올 1월 국내에서 충전기 점유율이 가장 높은 중앙제어를 인수했다. 롯데정보통신은 이를 통해 전기차 충전사업과 함께 모빌리티 사업 밸류 체인을 구축할 예정이다.
SK그룹은 세계 2위 전기차 급속 충전업체인 시그넷 브이 지분 55.5%를 인수하며 사명을 SK시그넷으로 바꾸고 글로벌 충전기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16년 설립된 시그넷 브이는 미국 초급속 충전기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GS그룹의 GS에너지도 지난해 7월 충전기 제조업체 지엔텔과 합작법인 지커넥트를 설립, 충전기 사업에 진출했다.
황재곤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충전 인프라 운영 회사들은 아직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보조금 없이 자체 투자로 충전기를 설치하는 업체들은 충전기를 설치할수록 오히려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자금 여력이 있는 충전업체는 투자를 하고, 대기업의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전기차 시장 확대를 대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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