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그는 “불만족을 만회하기 위해 다음 작품을 쓴다”고 했다. “엄청난 작품 하나 남기고 더 이상 쓰지 않는 천재적인 작가들이 있죠. 저는 아닙니다. 누가 저보고 대기만성형 작가라고 하더군요. 큰 그릇은 못되겠지만 만성형은 맞는 것 같습니다. 완성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게 저의 문학 여정입니다.”
<이국에서>는 그의 전작들과 닮은 듯 다르다. 인간 실존과 심리를 관념적으로 치밀하게 탐구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전개가 빨라졌다. 한국에서 한 정치인의 부하 직원이던 주인공 황선호가 뇌물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보보민주공화국이란 나라에 잠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흡입력이 강해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 작가는 “인물이 사건에 휘말려가는 모습을 통해 운명의 불가피함이나 선택의 불가능성을 그리고 싶었다”며 “사건 위주로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제 작품을 즐겨 읽던 독자들이 낯설어하지 않을지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그는 안식년이던 2018년 프랑스 남동부 도시인 엑상프로방스에 머무르며 이 소설을 문예지 ‘악스트’에 약 1년간 연재했다. 그때 같이 쓴 작품이 중편소설 <캉탕>이다. 2019년 출간된 이 소설은 그해 오영수문학상을 받았다. <이국에서>와 <캉탕>은 어떻게 보면 형제 소설인 셈이다. 그는 “두 소설 모두 외국이란 공간적 배경에 분위기도 비슷해 <이국에서>를 연재하는 과정에서 조금 길을 잃기도 했다”며 “다만 <캉탕>은 사색적이고 의식의 흐름을 따르지만 <이국에서>는 사건 중심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연재 후 소설을 고치는 기간이 길어졌던 이유다. 소설 속엔 외부인에 대한 불신과 배척, 내부인끼리의 차별과 혐오 등 코로나 당시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 많이 녹아 있다. 그는 “부정적으로 쓰였던 격리라는 말이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코로나를 겪으면서 생긴 의식의 변화, 타인에 대한 마음가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는 정치적 문제든, 사회적 이슈든, 어느 한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이를 ‘문턱에 서서 보기’라는 말로 표현했다. “작가는 문턱에 서서 이쪽도 보고, 저쪽도 봐야 합니다. 방 안에 들어서면 그쪽 사람들과 말은 잘 통하겠지만, 문밖의 사람들과는 소통이 안 되거든요. 그건 불행한 일입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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