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사고라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000년대 들어서도 미국과 독일 등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예견된 참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MBC와 KBS는 이태원에서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을 배경으로 축제라고 보도했다. 젊은이들이 이상한 서구문화에 침식된 것도 아니다. 그저 코로나로 짓눌린 몇년간을 떨쳐버리고 하루 이틀이라도 자유롭게 즐기고 싶어 했을 뿐이다. “밀지 마세요”라는 가슴 찢어지는 절규와 신음은 우리 모두가 초래한 것이다. 이번 참사는 위험에 대해 스스로가 끊임없이 반성하고 살펴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군중이 ㎡당 5명에 이르면 상황이 위험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1200여 명이 현장에 있었다면 ㎡당 10여 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생존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진 상태다. 누가 밀거나 허튼짓을 하지 않아도 매우 위험했다. 이런 위험에 대한 문제의식과 시민들의 위험 인지가 없었다. 우리 모두가 미련하고 무모했던 것이다.
국가와 정부는 살려달라는 국민에게 손을 뻗어야 한다. 실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정부의 기본적인 임무 의식이어야 한다. 행정안전부의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너무 무능하다. “경찰의 병력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집회나 모임에 시정해야 할 것이 있는지를 더 깊게 연구해야”라는 언사는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망각하고 그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함일 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공공기관들의 이 같은 태도와 안이한 임무 인식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방화 사건에서 192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만들었다. 참사 현장을 물청소해서 유족들이 쓰레기 포대에서 고인의 흔적을 찾게 했다. 과적 및 조작 미숙 사건인 세월호 사고를 299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만들었다. 구조라는 기본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장 대응에서도 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환자를 식별해 역량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다. 컨트롤타워가 환자를 식별하고 이송해야 한다. 그 기능이 전혀 구현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순천향병원에는 대부분 사망자가 이송됐고, 몇 안 되는 중환자는 멀리 떨어진 대형병원의 응급실을 전전해야 했다. 그 결과 몇 명이 추가로 사망했는지는 아마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몇 사람은 살릴 수 있었다.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교통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폴리스라인이 작동하지 않았다. 응급구조 구급차량은 제때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구경꾼과 피해자, 구조자가 뒤섞여 피해가 확산됐다. 매스미디어도 리스크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을 지키지 않고 선정적인 보도만을 일삼았다. 현장의 충격적인 상황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군중이 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도록 안내하지도 않았다.
유동 인구가 폭발적으로 많기로 유명한 일본 시부야에서는 경찰들이 대형트럭 위에서 확성기로 시민의 걸음걸이와 흐름을 통제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은 공권력이 그런 식으로 내 삶과 자유를 통제하기를 원치 않는다. 국민들을 초등학교 아이 체육 수업하듯 통제하려는 것은 건전하지 않다. 정부가 조금 더 부지런하고 스마트해져서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드론으로 고위험 현장을 봐야 한다. 인공지능(AI)에 기반한 과학적인 판단을 하고. 현장과 상황에 맞는 홍보와 안내를 할 수 있는 고지능-적응형 행정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정부의 권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높여서 국민을 더욱 자유롭게 해야 한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대형 카페리 운항이 재개됐다고 한다. 맹골수도를 우회해서 운항 시간이 40분 정도 늘어난다. 우리 국민은 이제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이태원을 가지 못할 것이다. 아주 먼 훗날 상처가 아물고 기억이 희미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이태원 거리를 거닐 그때까지 우리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진정한 원인을 찾아내고, 한 번 더 조심하고, 정부에 똑바로 하라고 냉철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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