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긴급 신고 112입니다.”
“여기 이태원 메인거리인데 압사당할 것 같아요. 너무 소름 끼쳐요. 통제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오후 6시34분)
경찰이 ‘이태원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를 11건이나 접수했지만 제대로 된 현장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지고 난리가 났다”, “빨리 좀 와달라”,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시민들의 절박한 호소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전 예측이 어려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해명과 달리 경찰이 안일하고 무능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첫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후 6시34분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이태원 해밀톤호텔 골목 인근 이마트24 근처라고 밝힌 신고자는 “골목이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며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사고 발생 전 해당 장소에서 신고자가 인파 통제를 요청한 것이다. 경찰청 기록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강력 해산 조치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해산 조치를 했는지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
이후 또 다른 신고가 이어졌다. 오후 8시9분 다른 신고자는 “인원이 너무 많아 밀치고 난리가 나면서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며 “이것 좀 단속해주셔야 할 거 같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네, 저희가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경찰 기록에는 “대상자들을 인도로 안내 후 종결”이라고 돼 있다. 해당 신고자와 관련해 안전 조치를 하고 임무 수행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은 근처 통행로에 경찰관이 배치됐다고 통보한 뒤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다수 목격자는 “사고 몇 시간 전부터 경찰들이 통행로에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시민들이 경찰에 직접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후 9시7분에 접수된 통화에서 신고자는 “만남의 광장이란 술집 쪽인데 여기 사람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에 있다”며 “선생님 여기 와서 xx(소음으로 확인 불가)해주셔야 된다. 사람 다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좁은 골목 양방향에서 몰리는 바람에 다수가 깔리거나 넘어진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방법을 시민이 경찰에게 제시한 것이다. 경찰은 그러나 “신고자에게 현장 상황을 설명한 후 종결” 처리했다.
사고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신고자들의 다급함은 더 커졌다. 오후 10시11분 이태원동 119-7, 정확히 사고가 난 지점에서 마지막 신고 전화가 있었다. 신고자는 “여기 압사될 거 같다. 난리 났다”고 호소했다. 녹취록에는 당시 뒤엉켜 신음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담겨 있었다. 경찰관은 “경찰, 그쪽으로 출동할게요”라고 통화를 마쳤지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1일 기준 이태원 참사 사망자는 최소 156명, 부상자는 157명이다. 경찰청은 이날 녹취록을 공개한 뒤 “112 신고 녹취록을 공개한 것은 앞으로 뼈를 깎는 각오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다수의 112 신고에도 왜 현장 근무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감찰을 벌일 방침이다.
권용훈/강영연/구민기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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