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는 한국 백화점의 효시다.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에서 출발한 동화백화점을 1963년 삼성이 인수하면서 신세계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80년까지 신세계는 늘 1등이었다.
롯데쇼핑의 등장으로 단숨에 판도가 바꼈다. 영업 첫 해인 1980년에 롯데쇼핑은 454억원이라는 당시로선 기록적인 매출을 거두며 단숨에 유통업계 정상에 올랐다. 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은 1982년에 단일 점포로는 업계 최초로 1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요즘 신세계 내부에선 “내년이 D데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내년 말이면 업계 1위에 등극할 것이란 예상이 팽배하다.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 등 3사의 성장세가 근거다. 작년과 올해처럼 20%대의 성장률을 내년에도 달성할 경우 약 14조9000억원의 거래액을 달성해 롯데백화점(약 14조8000억원)을 근소한 차이로 역전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신세계의 시뮬레이션대로 된다면, 이명희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신세계 강남점이 단일 점포 매출 기준으로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을 제친데 이어 백화점 전체 거래액 1등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마침내 완성하게 된다.
신세계의 올 3분기 누적 거래액은 8조2348억원으로 롯데백화점의 9조1001억원에 못 미친다. 하지만 성장세는 다른 백화점을 확연히 앞선다. 2021년과 올해(9월 누적 기준) 신세계의 성장률은 전년 대비 각각 29.1%, 25.5%다. 롯데백화점은 같은 기간 12.6%, 14.7% 성장을 달성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각각 23.6%, 12.9%다.
상대적으로 롯데백화점의 확장세가 주춤하고 있는 것도 신세계가 1등 고지를 넘볼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롯데는 1998년 외환 위기 직후 자금난에 처한 지방의 백화점들을 인수하며 외형 확장을 거듭했다. 평범한 중산층도 백화점의 고급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하고, 토종 패션 브랜드를 키운다는 롯데백화점의 전략은 코로나19 전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신임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중소형 규모의 최고급 백화점을 지향한다”며 “지방점 구조조정 등 당분간 외형 확장을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올 3분기에도 이보다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실적을 거뒀다.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1조9551억원, 153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7.3%, 49.4% 늘었다. 백화점 사업만 따로 뗀 매출액은 6096억원으로 전년대비 19.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094억원으로 50.5% 성장했다.
차정호 백화점 부문 사장의 교체는 신세계의 고민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세계 그룹 관계자는 “차 사장이 인사 수개월 전부터 용퇴 의사를 밝혔다”며 “미래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 지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 아니겠냐”고 추론했다.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의 전략실 기능을 하고 있는 백화점 부문 대표의 후임으로 허병훈 부사장을 선임했다. 허 부사장은 약 4년 전에 호텔신라에서 신세계로 영입된 재무·관리 전문가다.
향후 신세계 주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백화점 외에 다른 미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우세하다면 당분간 주가는 우상향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반대의 시각에도 힘이 실린다. 소비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내실 경영이 오히려 투자자의 지지를 얻을 것이란 분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 총괄사장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공동 대표로 패션 브랜드 전문가를 면접하고 있다”며 “백화점과 동떨어진 전혀 새로운 미래를 찾기보다는 온·오프라인 유통에 패션 브랜드 육성을 결합한 모델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