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같은 로댕이 내 것 훔쳤다"…연인에 가려진 천재 조각가 클로델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입력 2022-11-02 17:36   수정 2022-11-03 00:34

“로댕, 악마 같은 로댕. 그저 내 것을 훔칠 생각만 했어. 내가 자기보다 잘될까 봐.”

정신병원에 있는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분개한다. 화를 내는 대상은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세계적인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화를 내는 사람은 프랑스 출신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이다. 클로델은 로댕에 못지않은 천재 조각가지만, 세상에는 ‘로댕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생전에 최고의 조각가로 인정받은 로댕과 달리 클로델은 살아 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나중에는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2013)은 큰 산과 같은 연인의 위세에 눌리고, 여성 예술가라는 굴레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클로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루노 뒤몽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엣 비노쉬가 클로델 역을 맡았다.

클로델은 어릴 때부터 찰흙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가 당대 최고 조각가로 꼽히던 로댕을 만난 건 19세 때였다. 당시 로댕의 나이는 43세였다. 로댕의 제자 겸 모델이 된 클로델은 24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로댕과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클로델은 10년 동안 로댕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이 사랑의 대가는 너무 컸다. 로댕이 여성 편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댕의 곁엔 20년간 사실혼 관계를 이어온 연상의 여인 로즈 뵈레도 있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스캔들도 있었다. 클로델의 ‘사쿤탈라’(1888)와 로댕의 ‘영원한 우상’(1898)이라는 작품이다. 격정적인 에너지, 육감적인 포즈 등이 비슷하다. 로댕은 클로델이 작품을 출품하지 못하도록 힘을 써 표절 시비를 잠재웠다. 로댕은 이후 자신의 아이를 유산한 클로델을 돌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클로델은 다양한 작업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뭘 하든 ‘로댕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집어삼켰다. 여성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깊은 절망에 빠진 그는 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렸다. 클로델은 정신병원에 30년 동안 갇혀 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잘못된 만남’과 ‘잘못된 시대적 관념’은 이렇게 한 여성 예술가의 빛나는 재능을 독으로 만들었다. 절망한 클로델은 자신이 만든 작품까지 깨부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그의 작품이 고작 90여 개에 불과한 이유다.

김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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