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1840~1926)가 그린 보랏빛 ‘수련 연못’과 푸른빛의 ‘수양 버드나무’.
두 점의 그림 사이로 멀리 보이는 벽엔 마치 모네의 색채를 하나하나 뽑아내 재구성한 듯한 거대한 추상화 넉 점이 걸려 있다. 프랑스 인상파 대표 화가 모네의 그림들이 미국 추상화가 조앤 미첼(1925~1992)의 그것과 만나 역동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세계 주요 미술관의 전시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의 ‘모네-미첼’ 전시장 모습이다. 모네의 그림 36점과 미첼의 대작 24점이 3개 층의 갤러리에 전시됐고, 지하 별도 갤러리에선 미첼의 대규모 단독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세라 로버츠와 케이티 시걸 큐레이터는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당대 최고로 인정받는 위대한 두 예술가의 역사적 대화”라고 했다.
모네가 지베르니정원으로 이사한 건 1883년. 뉴욕에 살던 미첼이 지베르니정원 인근의 베퇴유로 이주한 건 1968년. 당시 두 화가의 나이는 모두 43세였다. 미첼은 프랑스에 정착한 지 10년 뒤 아예 모네의 지베르니 집이 내려다보이는 집으로 이사해 “빛과 색을 포착하기에 가장 좋은 영감을 주는 장소”라며 “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내 감각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고 했다.
이 전시에 걸린 모네의 후기 추상 풍경화 40점은 모두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그려졌다. 이 시기 모네의 작품들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50년대 미첼은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리 크라스너 등 동시대 미국 화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전후 미국 추상화의 핵심 축으로 활동했다. ‘뉴욕파’로 불리던 당시 화가들은 프랑스 인상파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적 추상화의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한 인물들이다. 미첼은 모네의 자취를 따라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 유일한 작가였다.
청색증과 황색증으로 모든 시야가 푸르거나 노랗게 보이는 상황에서 모네의 추상 풍경화가 탄생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오직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모네는 평생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그렸다. 그 깊은 물빛을 표현할 때 파란색과 보라색을 주로 사용했다.
미첼은 그런 모네의 보라색을 사랑했다. 모네의 수련(1917~1919)과 미첼의 강(1987)을 나란히 두고 보면 놀랍게도 비슷한 감상이 몰려온다. 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비슷해 같은 작가의 작품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미첼은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를 기리며 그린에드리타프리드(1981) 3부작에서 모네가 사용한 보라색과 파란색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미첼도 친한 예술적 동지와 친구들을 잇달아 떠나보내며 이들을 추모하는 연작을 그렸다. 노란색과 파란색 등 다채로운 색들이 뒤엉키고 분출하면서 삶과 죽음, 인간 감정의 복잡한 구조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수전 페이지 루이비통재단 예술감독은 “미첼은 연약하고 섬세한 동시에 극도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놀라운 작가”라며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해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찬사를 받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대작들이 뿜어내는 열정은 자유롭고 호화롭다”고 했다.
전시는 미첼이 1983년과 1984년 사이에 그린 10점의 대작 회화 연작 ‘거대한 계곡’으로 끝난다. 1984년 전시회에서 선보인 후 10점의 그림이 한자리에 모인 건 40년 만이다. 전시를 위해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파리의 마르모탕모네미술관과 미국 주요 미술관, 조앤미첼재단 등이 긴밀히 협업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다.
파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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