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발전사 경쟁시켜 한전 전력구매價 인하…전기료 인상 압박 낮춘다

입력 2022-11-03 17:52   수정 2022-11-04 01:59

정부의 전력시장 개편안은 발전사를 경쟁시켜 한국전력의 전력구매가(전력도매가) 인하를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전력시장에 시장경쟁을 도입해 전력도매가를 낮춤으로써 전기요금 인상 압박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전력도매가는 발전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 좌우되는데 한전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이런 구조를 깨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확정되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 전력시장 개편 방향’에는 가격입찰제를 비롯해 전력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이 대거 담겼다.
전력시장 ‘가격입찰제’ 도입
전력시장 개편 방향의 핵심은 전력도매가 결정 과정에서 시장 기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가격입찰제를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가격입찰제는 1단계와 2단계로 나눠 추진된다. 1단계에선 각 발전사가 기준연료비(직전 1년간 연료비 평균치)의 ±5~10% 범위에서 연료비, 변동비, 고정비 등 각종 비용에 적정이윤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발전사가 써낸 입찰가로 낙찰받으면 그 가격에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게 된다. 입찰에서 떨어진 발전사는 전기를 팔지 못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가격경쟁이 활발해지고 결과적으로 한전의 전력구매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런 방식이 안착되면 2단계로 ‘기준연료비의 ±5~10%’와 같은 제한이 없는 전면 가격입찰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는 전력거래소가 발전단가를 고려해 각 발전사에 급전(전기공급) 지시를 내린다. 통상 발전단가가 낮은 순서대로 원자력, 석탄, LNG 등으로 급전 순서가 정해진다. 이때 가동된 발전기 중 단가가 가장 높은 발전기 가격이 전력도매가로 결정된다. 발전단가가 비싼 LNG발전소를 기준으로 전력구매가가 결정되다 보니 발전사는 손해 보지 않는 데 비해 한전의 부담은 커진다. 한전이 올해 30조원 이상의 대규모 영업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 중 하나다.
경쟁 활성화 대책 총망라

전력시장 개편안엔 가격입찰제 외에 다양한 경쟁 활성화 방안이 담겼다. 전력 수급 여건을 실시간 반영해 정확한 전력의 가치를 산정한 뒤 보상하는 ‘실시간시장’이 대표적이다. 실시간 예측 수요를 토대로 15분 단위로 전력 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다.

발전사뿐만 아니라 전력 수요자인 한전도 원하는 가격으로 전력구매 입찰에 나설 수 있는 양방향 입찰제가 도입된다. 발전사가 직접 전력 수요 기업 등과 계약을 맺고 전기를 파는 직접전력구매계약(PPA)도 확대된다. PPA 제도는 지금은 기업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참여 확대를 지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PPA가 확대되면 전력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난다.

기저발전원이면서 발전단가가 싼 원전과 석탄발전소는 사전에 한전과 협의해 전력공급 가격을 정하는 계약(정부승인차액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이렇게 되면 발전사와 한전 모두 전력도매가의 급격한 변동에 대비할 수 있다. 또 이 제도 도입을 전제로 한전이 임의로 발전사 수익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정산조정제도는 폐지할 계획이다. 정부승인차액계약이 허용되면 적정 투자보수를 고려한 계약 가격이 설정되는 만큼 석탄발전소의 과다수익을 제한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산조정제도는 시장경쟁과 배치되는 대표적인 반(反)시장제도란 비판을 받아왔다.

일각에선 전력산업 구조 개편이 동반돼야 실질적인 전력시장의 시장 기능 회복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전이 가정과 기업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배전을 독점하는 현행 전력산업 구조에선 시장경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력거래시장을 시장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은 큰 진전”이라면서도 “한전 독점 구조를 깨는 전력산업구조 개편도 함께 이뤄져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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