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약어)'라는 말이 유행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송합니다(이과라서 송구합니다)'의 나라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일본의 이공계 학위 취득자의 비율은 35%로 프랑스(31%)와 함께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다. 영국이 45%로 가장 높고 ,한국과 독일도 42%에 달한다. 미국의 비율은 38%에 그쳤지만 문과와 이과를 동시에 전공하는 비율이 많아 이공계생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일본보다 유일하게 이공계생 비율이 낮은 프랑스도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모호하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과목을 문학, 경제사회, 과학 등 3개 코스에서 하나로 통합했다. 고교 2학년까지는 과학 등 6개 과목이 필수과목이고 수학 등 13개 가 선택과목이다.
일본은 법학·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공자가 33%로 가장 많다. 공학이 15% 뒤를 이었지만 이학과 농학은 각각 3%에 불과했다. 이과 계통 전공자 가운데는 의·치학, 약학과 전공자가 11%로 공대 다음이었다. 인문과학 전공자도 14%에 달했다.
일본의 극단적인 문과 편중을 보여주는 사례가 여자대학교의 공학부 비율이다. 올해 4월 나라여대가 공학부를 신설하기 전까지 일본에는 공대가 있는 여자대학이 없었다. 일본 최고 명문여대 오차노미즈여대도 내년부터 공학부를 신설할 예정이지만 공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이 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한 고교 수학교사는 "딸이 이공계를 선택해서 대학원까지 진학하면 결혼이 늦어질 것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있다"며 "비싼 학비도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남녀공학인 나고야대와 시바우라공대는 입시 전형에 '여성 할당제'를 도입했지만 남녀평등 논란을 빚고 있다.
일본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도 문과 계통 중심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인구 감소로 수험생 획득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입시 과목에 수학을 넣는 순간 지원자가 감소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공계 분야로 진출하는 일본 여대생의 비율은 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의 21%가 이공계로 진출하는 한국의 3분의 1에 그친다. OECD 평균은 15%다.
인문 계열 졸업자의 67%가 여성인 반면 공학 계열 졸업자의 여성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이학 계열 졸업생도 남학생이 71%인 반면 여학생은 29%에 그쳤다.
보다 못한 일본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지난 5월 총리 직속 교육미래창조회의는 이공계생 비율을 10년 이내에 50%로 늘린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공계 학부를 신설하거나 늘리는 대학에 3조원 규모의 자금도 지원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국가경쟁력을 결정할 인공지능(AI), 디지털 대전환(DX), 탈석탄화 기술 관련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공계 학과를 신설하거나 늘리는 대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이를 위해 3000억엔(약 2조8966억원) 규모의 기금(가칭 '대학 등 기능강화 지원기금')을 신설해 내년부터 한 학교당 최대 20억~30억엔을 지원할 방침이다. 2000억엔으로 예상됐던 기금 규모가 1000억엔 더 늘었다.
2021년 정부의 사립대 지원 금액은 학교당 평균 4억8000만엔이었다. "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수 년치 재정지원을 한꺼번에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지원 대상은 ▲이·공·농학계 학부를 늘리거나 기존 학부를 이·공·농학계 학부로 전환하는 공립대와 사립대▲디지털 분야의 학부를 늘리는 국공립대와 사립대 및 대학원, 고등전문학교다. 일본 정부는 기금을 통해 이 대학들의 초기 설비투자와 학부 재편 후 운영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공계 학부를 늘리는 대신 다른 학부의 정원을 줄이도록 해 전체 정원을 유지하는 '스크랩 앤 빌드'를 원칙으로 한다. 대학들이 기금 신청을 구실 삼아 학부의 숫자와 정원을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국립대학은 인재가 특히 부족한 정보과학 분야의 학부를 강화하면 예외적으로 정원 증가를 인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정보기술(IT)과 탈석탄 전문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2030년 IT 분야에서만 인재가 최대 79만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관련뉴스